[김진혁의 돈으로부터의 자유] 8월 15일 메디치 가문의 부

2021-08-15     김진혁

햇살을 뚫고 나오지 못할 만큼

두터운 구름은 없다.

- 금언 -

[파이낸셜리뷰]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의 문화와 예술을 후원 부흥시켜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주역이었다. ‘일 마그니피코(il Magnifico, 위대한 자)’라고 불리는 로렌초 데 메디치는 이런 시를 남겼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자들이여, 행복을 즐겨라. 내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메디치의 부는 교육과 인맥의 힘에서 비롯된다. 피에로는 자식들을 인문학자에게 배우게 했고 명문가와 결혼을 시키는 예지력을 발휘했다. 3명의 교황과 34명의 추기경을 배출한 바 있는 명실상부한 로마의 최고 가문 오르시니 가문과의 결혼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에서 농사짓던 메디치 가문이 유럽최고의 부호가 된 시기는 십자군원정 시대이다. 사업의 중요성을 알고 은행업을 장악하면서 서유럽의 보석 비단을 교역하는 무역을 잡은 것이다. 특히 1397년 피렌체에 지오반니 디 비치(1360~1429)는 메디치은행을 본격적으로 설립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는 친절하고 인정이 많은 평판이 좋은 은행가로 교황청과의 인맥을 통해 사업을 키워나갔다. 메디치 은행은 공신력과 각국에 퍼진 지점망을 바탕으로 환어음을 유통시켰고 이를 통해 엄청난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훌륭한 은행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전통적 행동지침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처신을 조심히 하고 외교적 중립을 취하며, 두 번째는 무역과 사업을 확장시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명예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지켰다. 사회에 빈민구제소를 짓고 운영기금을 내놓았다. 수많은 성당, 고아원, 병원에 거액을 기부했으며 예술 후원에도 적극적이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을 후원했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저자인 에드워드 기번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코시모 메디치의 이름은 르네상스와 동의어라 해도 다름없다. 그의 신용은 명성으로 승화했고, 그의 부는 인류에 대한 봉사를 위해 바쳐졌다.”

♣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주식을 발행할 경우 투자자가 미리 약정된 가격에 일정한 수량의 신주(新株)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인 워런트(Warrant)가 결합된 회사채를 말한다. 투자자들은 발행기업의 주가가 약정된 매입가를 상회하면 신주를 인수하여 차익을 얻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인수권을 포기하면 된다. BW는 일반 채권에 비해 발행금리가 낮아 발행 회사는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