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기조에 갈 곳 잃은 자금...은행권 ‘요구불예금’ 한 달새 4조↑
2017-11-14 서성일 기자
[파이낸셜리뷰=서성일 기자] 지속되는 저금리 기조 속에 갈 곳을 찾지 못한 자금이 국내외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은행권 요구불예금으로 몰리고 있는 모양세다.
이는 최순실 국정 개입 사태가 부른 국내 혼란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됨에 따른 거센 후폭풍이 전세계적으로 몰려온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현금이 많은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이자수익이 안되더라도 언제든 찾을 수 있고 안전한 곳에 돈을 맡기려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과 국민, KEB하나, 우리, 농협 등 주요 5대 은행의 지난 10월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409조 5994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9월말 대비 4조 5287억원 증가한 수치다. 잔액 증가율은 1.11%로 9월 증가율(0.39%)의 세 배에 달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월평균 증가율 0.63%보다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5대 은행 가운데 자산가 고객 수가 많은 편인 KEB하나은행의 요구불예금 증가 속도가 눈에 띄었다. KEB하나은행에는 지난달에만 총 1조 6819억원의 요구불예금 잔액이 증가했다. 전월 대비 2.64% 증가해 5대 은행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자산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과 변동성”이라며 “이달 들어서도 요구불예금 계좌로 돈을 옮겨놓는 고객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관계자는 “국내 정치 불안정성에다 미국 대선 변수가 겹치면서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당분간 돈을 묶어놓고 관망하자는 분위기가 심해지는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요구불예금의 한 종류인 수시입출식예금(MMDA)에 많은 자금이 몰리고 있다. 10월말 기준 5대 은행의 MMDA 잔액은 88조 8097억원으로 전월말 대비 1조 7493억원 증가했다. 지난달 요구불예금 전체 증가액의 40%가량을 MMDA가 차지했다.
보통예금·당좌예금 등 단기성 자금으로 분류되는 요구불예금은 예금주가 원하면 은행이 언제든지 조건 없이 돈을 지급하는 예금이다.
요구불예금은 통상 지급되는 이자가 거의 없다. 하지만 요구불예금의 한 종류인 MMDA는 금액에 따라 연 1% 미만 소액의 금리를 적용한다.
아울러 1억원 이상을 입금하면 연 0.6~0.7%의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투자처가 생기면 바로 돈을 찾아 투자하려는 자산가들이 MMDA를 선호하고 있다.
또한 요구불예금이 증가하자 은행들은 내심 반가운 분위기다. 저원가성 예금으로 불리는 요구불예금은 은행의 조달비용을 낮춰 수익성을 개선하는 효과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저금리에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올해 3분기 주요 은행이 기대를 웃도는 이익을 낸 데는 꾸준히 증가하는 저원가성 예금 덕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민은행 프라이빗뱅킹(PB) 관계자는 “미국 대선 결과가 앞으로 금리 향배 및 금융시장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하는 자산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점은 가볍게 볼 수 없는 변수여서 앞으로 단기 부동화 현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