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칼럼]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2021-06-04     김진혁, 시인, 행정학 박사
“지금 나는 행복한가?”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행복하게 만드는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뜬금없는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일하지 않으면 밥 한 술 먹기 어려운 지금 한가로이 행복을 논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질문이 언제부턴가 목표와 수단이 뒤바뀌어버린 채 잘못되었다. 풍족하든 부족하든 인간은 언제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일도 공부도 휴식도 더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인생에서 행복은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 사실을 망각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지엽적인 수단에 집착할 때 우리는 불행해진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생각을 바꾸면 미소만 지어도 행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성공이 꽃이라면 행복은 뿌리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겉만 화려하고 뿌리가 없는 성공이란 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고 허무감과 외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면 인생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 주변에 향기를 흩뿌린다. 행복에 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돈과 명예가 많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는 사람들이 있다. 돈과 명예를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돈과 명예를 행복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태도가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연봉이 3억이 되는 A씨는 휴가를 가도 항상 노트북을 챙겨가서 직원들과 수시로 통화해야 한다. 벤츠기사와 주변 비서들이 있어도 항상 회사의 급하고 산적해 있는 일로 인해 스트레스가 떠나지 않는다. 반면 말단 직급의 B씨는 연봉이 적고,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해도 가정에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1924년 더운 여름날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중국 쓰촨성의 아미산을 구경하기 위해 가마를 타고 산에 올랐다. 아름다운 산세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잠시 뿐,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을 태워 산길을 걸어가는 가마꾼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 가마꾼은 내가 얼마나 미울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게 틀림없어? 산허리의 작은 전망대에 이르렀을 때 쉬어가자고 말하면서 가마에 내려 짐꾼의 표정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가마꾼들은 나란히 앉아 담배를 꺼내 물고, 즐겁고 웃음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닌가? 고단한 운명을 한탄할 것으로 생각했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러셀은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고백했다. 화려한 집에 사는 걱정 가득한 부자가 초라한 작은 집에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부귀와 비천, 부유와 가난은 거울의 추일뿐 행복을 가름하는 저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