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요소수 대란’ 속 롯데정밀화학, 아쉬운 10년 전 명맥 끊긴 요소 공장

2021-11-19     이석원 기자
사진=롯데정밀화학
[파이낸셜리뷰=이석원 기자] 중국의 석탄 부족으로 인해 시작된 ‘요소수 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들이 대응 방안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 요소수 제조·생산업체인 롯데정밀화학은 최근에 요소수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3개월분의 요소수 물량을 확보했다. 또한 롯데정밀화학은 안정적인 요소수 공급을 위해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요소수 생산 즉시 전국의 판매망을 통해 신속하게 공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요소수의 원료인 요소는 대부분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산 요소 수입이 중단되면서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의 요소수 생산라인 중 일부가 가동을 멈추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요소를 중국 수입에 의존한 것은 아니다. ◇요소 생산했던 롯데정밀화학 우리나라 요소 산업의 역사는 196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내에는 비료공장이 없어 사용되는 비료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었는데,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고 식량 자급화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정부는 비료를 만드는 회사의 설립을 적극 추진했다. 이에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외국산 비료 수입으로 인한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한국비료공업 주식회사(현 롯데정밀화학)를 설립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한국비료공업은 일본 화학회사 미쓰이로부터 4880만 달러의 상업차관을 받아 울산에 국내 최초의 요소 비료, 요소, 암모니아 공장을 세웠다. 1966년 한국비료공업이 사카린을 건설 자재로 꾸며 밀수를 하다 부산 세관에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카린은 비싼 설탕 대신 단맛을 내는 데 쓰이던 주요 원료였고, 해당 사건은 ‘한국비료공업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불렸다. 해당 사건의 여파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한국비료공업 이창희 상무가 구속됐고, 이병철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삼성그룹은 한국비료공업의 주식 51%를 국가에 헌납했다. 한국비료공업은 이후 산업은행이 최대주주가 되면서 공기업 형태로 경영됐다. 한국비료공업은 1973년 요소를 주원료로 하는 공업용 화학물질 '멜라민'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농업용 요소뿐만 아니라 공업용 요소로 사업을 확장했다. 1976년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1994년 산업은행이 한국비료공업 매각을 위한 공개 입찰을 실시해 삼성그룹은 대림산업, 금강그룹 등이 참여한 입찰에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면서 27년 만에 경영권을 찾아왔다. 1994년 10월 한국비료공업은 삼성정밀화학(주)으로 이름을 바꾸고 삼성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인한 국유화와 비료 산업 합리화 조치, 삼성그룹의 재인수 등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요소 생산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었던 삼성그룹 역시 중국산 저가 요소 공습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삼성정밀화학(현 롯데정밀화학)이 결국 2002년 울산 요소비료 공장 2개 라인 중 1개를 가동 중지했지만, 요소·암모니아 공장은 2003년 이후로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매출액마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삼성정밀화학은 2011년 4월 요소 생산을 중단하고 사업에서 완전 철수했다. 이후 자체 생산 대신 해외 수입으로 요소 수급처를 바꿨고, 2016년 2월 삼성정밀화학이 롯데정밀화학으로 사명을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