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부채표 활명수’ 동화약품, 신약 개발 ‘절실’

2023-01-20     이석원 기자
[파이낸셜리뷰=이석원 기자] 국내 제약업계 ‘최초’의 발자취를 찾아가다 보면 올해로 창립 125주년을 맞는 국내 유일의 일업백년(一業近百年) 제약사, 동화약품과 마주하게 된다. 동화약품은 국내 ‘최초’이자 최고(最古) 제약회사이며, ‘최초’의 의약품 ‘활명수’를 비롯해 ‘최초’의 등록상표인 ‘부채표’ 등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군의 자금을 지원한 기업이기도 해 국내 제약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제약사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동화약품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신약 개발에 대한 도전 등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끊임없는 변화에 나서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 ‘활명수’ 우리나라 대표적인 소화제인 ‘활명수’는 1897년 당시 조선 국왕의 경호실인 선전관 출신으로 한약 지식에 능통하던 민병호 선생이 궁중 비방에 서양 양약 비법을 더해 개발한 최초의 의약품이다. 또한 민병호 선생은 아들인 민강 선생과 함께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을 창업했다.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으로, 당시 급체·토사곽란 등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에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 또 당시 활명수 한 병값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지만, 기존의 한약처럼 달여 먹지 않아도 되고 효력이 빨리 나타나 초반부터 인기를 끌었다. 이에 유사상표가 많이 등장하자 동화약품은 1910년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민족정신을 내포한 ‘부채표’를 상표로 등록했다. 1900년대 중반에는 ‘활명수’와 비슷한 제품이 난립했는데, 특히 1965년 삼성제약이 ‘까스명수’를 선보이며 선두 자리를 위협했다. 그러나 동화약품은 1967년 기존 활명수에 탄산을 첨가한 ‘까스활명수’를 내놓았고,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함으로써 소비자들이 ‘활명수’와 ‘부채표’를 연결해 인식하게 하며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까스활명수’는 시장 출시 이후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며 동화약품의 대표 제품으로 성장해왔다. 이후 ‘까스활명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재는 일반의약품인 ‘까스활명수큐’를 비롯해 ‘미인활명수’, ‘꼬마활명수’등 다양한 변신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활명수 기념판’을 출시하는 등 장수 브랜드에 젊은 감각을 입히는 노력을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처럼 동화약품은 국내 최초의 신약인 ‘활명수’를 활용한 신제품 개발에 나서면서 1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을 이끌고 있다. ◇독립운동 도운 ‘민족 기업’ 동화약품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자금 조달과 비밀 연락망을 운영하는 등 독립운동에 힘써 ‘민족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초대 동화약품 사장인 민강 선생은 1909년 청년들을 중심으로 대동청년당을 결성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고, 서울 연통부의 행정 책임자를 맡으며 ‘민족 기업’으로서의 서막을 알렸다. ‘서울 연통부’는 1919년 3·1 운동 직후에 체계화된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와의 연락을 위해 만들어진 비밀 단체다. 또한 민강 선생은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민강 선생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차례 옥고를 치르다 순국했고, 이후 회사는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동화약품은 경영상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자 축하 광고를 게재해 국민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동화약품은 1937년 제5대 사장인 보당 윤창식 선생이 인수하면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현재 동화약품을 이끌고 있는 윤씨 가문이 시작됐다. 동화약품의 경영 기틀을 만든 윤창식 선생은 민족자립을 목적으로 한 비밀 결사 조직 ‘조선산직장려계’를 결성해 총무로 활동했고, 빈민 계층을 도운 ‘보린회’와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를 지원하며 독립운동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윤창식 선생의 아들인 윤광열 명예회장도 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일제에 강제 징집됐다가 탈출해 중국 상해의 정부군을 찾아가 주호지대 광복군 5중대 중대장직을 맡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 경영을 이끈 CEO들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해오면서 동화약품은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 민족과 함께 커왔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신약 개발 나서는 동화약품 최근 동화약품은 지난 긴 역사와 달리 외형을 키우지 못해 다소 위축된 성장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동화약품은 다른 제약기업이 전문의약품으로 승부를 보는 것과 다르게 일반의약품 매출 비중이 높고, 신약 파이프라인도 많은 편이 아니다. 이처럼 동화약품은 현재 신약 개발을 통한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탄탄한 일반의약품을 기반으로 좀 더 적극적인 연구개발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동화약품은 지난 14일 경기도 용인 소재 동화약품 연구소에서 인공지능(AI) 신약 벤처기업 온코크로스와 ‘AI기반 항암제 신규 적응증 발굴을 위한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양사는 온코크로스의 AI 플랫폼을 통해 동화약품이 보유한 항암신약 후보물질의 신규 고형암 적응증을 도출할 계획이다. 또한 동화약품은 지난 2020년에도 인공지능 헬스케어 솔루션기업인 ‘뷰노’에 투자한 바 있다. 더불어 지난 2016년 동화약품은 국산 신약인 퀴놀론계 항균제 ‘자보란테’를 출시해 기존 퀴놀론계 항생제 대비 우수한 항균력과 안전성은 물론, 높은 복용 편의성과 글로벌 항생제 시장에서의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동화약품은 지난 2016년 울산과학기술원과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연구개발에 관한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을 시작으로 항암제, 알레르기 질환 치료제, 면역질환 치료제 등 기술이전 협약을 진행하며 신약 개발에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