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좀도둑으로 전락한 대도(大盜) 조세형

2023-02-23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80년 유력 인사의 집들을 연달아 털면서 이른바 ‘대도(大盜)’로 불렀던 조세형(84)씨가 검찰에 송치됐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23일 특가법상 절도 혐의로 구속된 조씨를 수원지검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용인시 처인구 고급 전원주택 등 3곳에서 공범인 a씨와 귀금속과 현금, 명품브랜드 가방 등 3천300만뭔 상당의 물건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법원은 지난 1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열고 범죄 혐의가 소명디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인정된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조씨는 2019년 3월부터 6월까지 총 6회에 걸쳐 서울 일대에서 약 1천200만원 상당을 절도하거나 시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가 있다. 한때 대도라고 불리었지만 이제는 좀도둑으로 전락한 셈이다.

16살 때부터 도둑질 시작

조씨는 고아 출신으로 16살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시작했으며 1982년까지 11차례나 붙잡혀 감옥살이를 했다. 조씨는 5계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계명은 다음과 같다. 1.나라 망신을 시키지 않기 위해 외국인의 집은 털지 않는다. 2.다른 절도범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판·검사집은 들어갔다가도 그냥 나온다. 3.연장사용금지. 4.가난한 사람의 돈은 훔치지 않는다. 5.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 하지만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조씨가 유명하게 된 것은 김준성 전 경제부총리, 국회의원 및 부유층 등 유명인사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만 골라서 털었다. 그 중 장영자가 소유한 막대한 가격의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있으면서 화제가 됐고, 유명하게 됐다. 조씨가 도둑질을 했지만 도둑 맞은 피해자들이 신고조차 하지 않고 쉬쉬하게 되면서 일각에서는 절도한 그 돈이 애초 뇌물과 같은 불법으로 얻은 돈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조씨는 훔친 돈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등 자신만의 절도 원칙을 지키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1982년 당시 부유층에 대한 반감이 강하면서 조씨가 붙잡혔을 때 하루아침에 스타가 돼버렸다. 신문에는 ‘도학의 대가’ ‘도학박사’라는 기사가 넘쳐흘렀다. 여담으로 취객이 신문사에 전화를 해서 “조세형,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인거 같아요. 안 잡혔으면 좋겠다”고 전화통화한 사실도 있다. 당시 만평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2층집 담을 바라보며 “누구를 털어볼까”는 식으로 미화를 했다.

붙잡힌 이후

1982년 붙잡히면서 조씨는 자신은 부유층만 털었기 때문에 괘씸죄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의 선고를 받았다. 이에 대해 부유층 입막음을 위해 중형을 내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수감 중이던 1990년에 기독교로 귀의하고 1998년 11월 출소했다. 출소한 후 에스원에서 많은 수당을 주며 자문위원으로 활약했고, 경찰행정학이 개설된 대학 등에서 선도강사로 초빙됐다. 이후 목사 안수를 받아서 목사가 됐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다. 이에 개과천선의 대명사로 꼽혔다. 그러나 2000년 11월 도쿄 시부야구에서 주택 3곳을 털다가 현지 경찰에 총을 맞고 잡혔다. 모범적 수형생활과 한국 지인들의 탄원으로 2004년 3월 출소 후 귀국했다. 하지만 2005년 3월 24일 모 치과의사 집을 침입해 165만원의 손목시계를 훔치다가 걸려서 3년을 복역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절도 행각을 벌이면서 수감과 출소를 반복해야 했다. 한때 대도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이제는 좀도둑 노인네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