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결렬, 13대 대선 4자 필승론

2023-02-28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후보 단일화가 결렬됐다. 지난 27일 윤 후보는 안 후보 측이 단일화 협상 결렬을 통보했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전했다. 두 사람은 지난 7일부터 후보 단일화 협상을 해왔지만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협상 과정에서는 ‘대등한 자격의 공동 인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윤 후보 측이 안 후보 측에게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 후보 측은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면서 단일화에 실패했다. 이로써 4자 필승론이 대두됐다.

4자 필승론은 13대 대선

이에 4자 구도로 바뀌게 됐고, 윤 후보 측이나 국민의힘은 안 후보가 대선 완주를 하더라도 승리를 할 수 있다는 4자 필승론이 대두됐다. 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윤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안 후보 이렇게 4명이 대선 후보로 뛰어도 결국 윤 후보가 승리를 할 것이라는 4자 필승론이 나온 것이다. 이는 13대 대선 당시 4자 필승론이 오버랩될 수밖에 없다. 1987년 대선 당시에도 야권 후보 단일화가 가장 큰 이슈가 됐지만 결국 야권 후보 단일화는 실패하고 4자 필승론이 대두됐다. 하지만 현실은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교체의 열망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정권교체 열망 담았지만

1987년은 6.29 선언으로 인해 개헌이 되면서 직접 대통령을 유권자들이 뽑는 직접선거가 실시됐다. 이로써 정권교체의 열망도 뜨거웠다.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는 그런 열망이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이에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재 등이 대선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높았다. 김영삼 후보나 김대중 후보는 초기에는 양보의 미덕을 보였다. 1986년 김대중 후보는 “나는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김대중)의 사면·복원이 이뤄진다면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도록 권유할 것”이라고 발언을 했다. 이런 이유로 후보 단일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김대중 후보는 1987년 7월 10일 기자회견에서 “현재로서 불출마 선언은 변함이 없다”고 발언했지만 다음날인 7월 11일 인터뷰에서는 “작년의 불출마 선언은 전두환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대통령직선제를 하면 불출마 한다고 한 것이지, 이번처럼 국민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불출마 선언을 하룻밤에 뒤집게 된다.

단일화 무산

1987년 5월 통일민주당 창당 때만 해도 손을 맞잡고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국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에 홍사덕 전 의원 등이 둘 다 양보하지 않을테니 경선을 하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지구당과 당직을 김영삼계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경선 제안은 묻히게 됐다. 이런 이유로 양김 간의 자발적 합의가 필요한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밑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당내 조직책 선정 문제까지 얽히면서 김영삼과 김대중 세력 간의 골이 깊어지게 됐다. 재야에서는 ‘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까지 만들어 두 후보의 합의를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김영삼 후보가 대선 후보를, 김대중 후보는 당권을 맡는다는 합의가 잠정적으로 이뤄졌고, 기자회견만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 후보가 갑작스럽게 후보도 당권도 모두 가져가겠다고 하면서 결국 몇 시간 만에 단일화가 무산됐다.

4자 필승론

동교동계는 결국 배신감을 느끼면서 김대중 후보와 함께 모두 탈당을 했고,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야권은 분열이 됐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국민적 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결국 4자 필승론이 제기됐다. 노태우 후보와 김영삼 후보가 서로 인구가 많은 영남에서 경쟁해서 표가 갈리게 하고, 김종필 후보는 충청권을 가져간다면 김대중 후보는 연고지인 호남과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서 강점을 보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 바로 4자 필승론이다. 다시 말하면 4명 후보 모두 나온다고 해도 노태우 후보를 제치고, 김대중 후보가 승리한다는 것이 4자 필승론이다. 하지만 대선이 치러지면서 4자 필승론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노태우 후보가 충청과 수도권에서 나름 약진을 한 것이다.

만약 단일화를 했다면

일각에서는 13대 대선 당시 만약 단일화를 했다면 단일화 후보가 승리를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단일화로 인해 단일화 후보가 다른 후보의 지지층을 흡수하게 되면서 승리를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가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했다고 해도 전두환 정권 당시 3저 호황으로 인해 경제성장을 이룩한 점 등으로 인해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더욱이 군부독재에 대해 PK(부산 경남) 유권자들은 호남만큼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역시 노태우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줬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