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3월 2일 미국 의회, 아프리카 노예 수입 금지법 통과

2023-03-02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08년 3월 2일 미국 의회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북부는 공업단지가 생기면서 빠르게 산업화가 됐지만 미국 남부는 농업지대였다. 특히 면화 재배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그에 따른 흑인 노예가 필요했다. 면화는 꽃이 피고 난 후 빨리 땅에 떨어진다. 따라서 빠른 속도로 빨리 면화를 수확하는 것이 필요했고,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했다.

노동력 필요했던 남부 농장주

이런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포획해서 노예선에 태워서 남부로 보내는 것이었다. 이에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수입해서 미국 남부 면화 재배 노동력에 투입을 해왔다. 더욱이 1793년 엘리 휘트니가 목화에서 씨를 분리해주는 ‘조면기’를 발명하면서 미국 남부 지역은 엄청난 힘을 갖게 됐다. 이것이 서부로 이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 북부는 그야말로 초조함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북부는 미국 남부의 정치적 힘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노예 수입 금지 법안을 만들었고, 통과시켰다. 노예 수입 금지 법안이 통과됐다는 것은 사실상 미국 남부 농장주들은 면화 재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법안이 통과되면서 남부 농장주들은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노예들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는데 사실혼을 인정하면서 자연 출산을 조장해서 노예를 늘려나갔다. 혈연관계 노예라도 주인이 따로 떼어서 팔 수 있기 때문에 결혼 후에 얼마든지 되팔았다.

북부 흑인 납치해서 노예로

그리고 북부에 사는 흑인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만든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북부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흑인들이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니 탈출을 시도했고, 이에 오후 8시 이후 노예는 외출이 불가했다. 또한 노예를 잡기 위한 추노꾼도 있었다. 도망가다 붙잡힌 노예는 채찍질을 당했고, 목에 족쇄를 채우고 벌겋게 달군 인두에 몸을 지지거나 도망 노예를 감시하기 위해 방울을 달로 남자는 거세됐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도망 노예가 늘어나자 1850년 노망친 노예가 북부에서 잡히더라도 주인에게 바로 돌려보내는 법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북부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어났다. 그런 가운데 남부 미주리 출신 노예 드레드 스콧이 주인과 함께 오랫동안 북부에 살다가 다시 가족과 함께 고향인 남부 미주리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주인이 죽고 나서도 여전히 노예 취급을 받자 드레드 스콧은 소송을 제기했고, 이것이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링컨의 출현

드레드 스콧 소송은 패소를 했다. 판결 내용은 노예는 미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노예 해방에 관심이 있었던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남부 7개 주는 연방을 탈퇴해 남부연합을 형성한 후 북부를 공격하면서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남북전쟁 중 링컨은 노예 해방을 선포했고, 남북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나면서 노예들은 해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