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우크라이나 고려인,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

2023-03-02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고려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걱정이 늘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1만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인은 1930년대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된 사람들이다.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그들이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동유럽 국가로 가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사람들이 ‘고려인’이다.

조선족과 고려인은 다르다?

중국에 사는 한민족을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에 사는 사람을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조선족은 19세기 세도정치 하에서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백성들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만주로 향했다. 주로 피지배 계층이었다. 그들은 만주에 정착하면서도 ‘조선’왕조 체제를 그리워했기 때문제 ‘조선족’으로 불렀다. 하지만 고려인은 주로 구한말 일제의 압력에 의해 연해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면서 일제가 대한제국을 장악하고 그 기세로 연해주까지 밀고 올라올 것을 걱정한 러시아는 연해주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에 국내에서 일제의 탄압에 이기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연해주로 몰려갔다. 주로 자본가 아니면 양반 세력들이었다. 그들은 러시아의 지원 아래서 독립운동을 해왔고, 연해주에서 부유한 계층으로 성장했다. 더욱이 러시아에서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면서 소위 사회주의사상이 연해주에도 불어 닥치면서 더욱 강도 높은 무장독립 투쟁을 이어가기에 이르렀다. 이에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 역시 연해주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주도로 이뤄졌고, 그들의 명성은 더욱 커졌다.

자유시 참변

소련으로서는 점차 성장하는 독립운동 세력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이에 연해주 스보보드니에서 붉은 군대는 독립운동 세력에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독립운동 세력은 거부를 하자 이르쿠츠파 공산당과 러시아 동맹군이 독립운동 세력을 에워싸고 무장해제 시켰다. 이로서 연해주 내 독립운동 세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하지만 스탈린은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운동 세력들이 소련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들이 일제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스탈린은 1937~1939년까지 연해주에 거주하고 있던 한인들을 동유럽 국가로 강제 이주 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에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기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기르기스스탄 등에 이주를 시킨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살아남아

이렇게 강제 이주된 우리 민족은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일가를 이뤄왔다. 우리나라는 독립이 됐지만 대한민국과 북한이 수립되면서 강제 이주된 우리 민족은 우리나라와 북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이유로 만주에 살던 조선족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한국과 북한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소련 체제 하에서 생활을 하다가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고려인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독립국가들이 속속 출현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던 고려인들 역시 우크라이나라는 독립국가가 만들어지면서 그에 따라 우크라이나 국민이 됐다. 하지만 일부 고려인은 우크라이나 국민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