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조선시대 최대 전문직 여성 ‘궁녀’
2023-03-18 어기선 기자
궁녀 월급 살펴보니
궁녀의 월급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의전은 1년에 두 번 주는 옷값을 말하고, 선반은 궁중에서 근무하는 사람에게 주는 식사를 의미하고, 삭료는 매달 주는 월급을 이야기한다. 처음 나인은 살 4말 콩 1말 북어 13마리를 받았고, 무수리는 쌀 6말을 받았는데 이는 힘든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품계가 높아지면 월급은 더 많아지면서 상궁은 살 16말 이상 콩 5되, 북어 80마리를 받았다. 1925년 기록에 의하면 월급이 가장 많은 궁녀는 왕의 내전에서 일하는 지밀 궁녀로 적게는 50원에서 많게는 196원 정도였다. 현재 돈 가치로 환산하면 1원에 5만원 정도로 196원이면 980만원이다. 지밀 궁녀가 아닌 일반 궁녀의 월급은 40~80원으로 200~400만원 정도이다. 이같은 기록을 살펴보면 궁녀는 상당한 월급을 받는 전문직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궁녀는 어떻게 채용하나
궁녀 선출방법이나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양가의 딸 보다는 국가의 각 관청에 속해 있는 여자종 가운데 뽑앗다. 하지만 왕가에서는 가급적 양가의 딸을 궁녀로 선출하고 싶어하면서 10세 이상 딸 가진 집안에서는 서로 다퉈 일찍 결혼시키려고 했고, 이에 조혼 풍습까지 생겼다. 그러자 경종 때부터 양가의 딸을 뽑지 못하게 했고, 영조 때에는 무수리 출신이 숙빈 최씨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궁녀 되기 싫어요
고소득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궁녀가 되는 것을 싫어했다. 왜냐하면 왕의 여자가 되기 때문에 승은을 입지 않은 이상 후궁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궁궐 안에서 왕만 바라보고 평생 결혼도 못하고 늙어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록 8시간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 근무라고 하지만 노동력이 워낙 고됐다. 평생 결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성애가 비일비재하면서 그에 따라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소득자였기 때문에 인조-효종-현종 등 3대에 걸쳐 궁중에서 일했던 상궁 박씨는 자신의 명의의 부동산을 매입한 후 국가의 공증까지 받았다. 또한 왕의 승은을 입는 사례가 극히 낮았지만 어쨌든 숙종과 숙빈 최씨, 영조와 숙빈 최씨 등의 로맨스가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 ‘동이’ 혹은 ‘옷소매 붉은 끝동’가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