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일제강점기 패스트푸드, 설렁탕 그리고 혼분식의 소면
2023-03-25 어기선 기자
선농제에서 유래?
설렁탕을 흔히 선농제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다. 1940년 조선요리학에서는 조선시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에서 끓여 먹은 고깃국이라는 것이다. 선농단에서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의식을 치른 후 우골을 끓여 만든 소고기 국물을 나눠주고 밥을 말아 먹었다는 것에 시초했다는 것이다. 이에 선농단의 선농을 본떠 ‘선농탕’이라고 부르다가 ‘설렁탕’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선농단에서 의식이 끝나고 난 후 잔치를 벌였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관련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설렁탕의 기원설이 등장한 것이 1924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선농단에서 기원했다는 설은 사실이 아닌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각에서는 원나라 유목민의 고깃국 ‘슐루’가 고려에서 전래됐다는 기원설이다. 선농단 기원설이 설득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슐루’ 기원설이 나왔다. ‘곰탕’의 유래도 슐루의 한자어 표기가 ‘공탕(空湯)’이기에 여기서 나온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다만 몽골 유목민들이 끓어먹는 방식과 우리가 현재 먹는 설렁탕의 방식은 다소 다르다는 것이다. 슐루는 양고기와 양 창자를 넣어 끓은 고깃국이지만 설렁탕은 주재료가 ‘소’이다. 이에 설렁탕의 기원을 가장 오래된 가게 이문설농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눈(雪)처럼 희고 진한(濃) 국물(湯)’이라는 의미로, 요리를 완성한 뒤 모습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는 것이다.일제강점기 패스트푸드
설렁탕은 일제강점기 패스트푸드이다. 조선총독부가 식용 소고기 생산 정책을 내세웠고, 이에 육우 생산이 증가하면서 육우의 뼈가 시중에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본사람들은 소고기를 먹고, 우리나라는 육우의 뼈를 갖고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육우의 뼈를 끓여먹기 시작한 것이 설렁탕의 현재 모습이 된 것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육우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경성에는 정육점이 늘어났고, 소고기를 팔고 남은 뼈와 부산물들을 끓여서 음식으로 파는 가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설렁탕은 초기에 값이 싸면서도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인식을 가졌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패스트푸드’가 되는 셈이다.삶은 소면은 박정희 정권 혼분식 때문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이 된 이후에도 설렁탕은 서민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은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삶은 소면을 설렁탕에 집어넣지 않았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혼분식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혼분식을 강조한 이유는 당시 쌀 생산량이 낮았고, 소득은 증가하면서 쌀 소비량은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식량의 자급자족이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보를 중시했던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뤄내는 것이 필요했고, 뭐든지 쌀밥에 잡곡을 섞어야 했다. 설렁탕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흰밥이 아니라 잡곡밥을 설렁탕에 말아먹으면 맛이 없기 때문에 설렁탕을 팔던 주인들이 고안해낸 것이 바로 삶은 소면이다. 즉, 설렁탕에 삶은 소면이 들어간 것은 1970년대 혼분식의 영향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