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해외여행 수요 폭발, 그리고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2023-03-30 어기선 기자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전
이제는 해외여행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지만 1980년대까지 해외여행을 제한했다. 그 이유는 외화유출 방지, 공산권 국가 주민 간첩과의 접촉 등을 이유로 정부가 자국민의 출국을 제한했다. 이에 일반인들은 유학이나 해외취업, 출장, 이민 등이 아니면 여권발급이 불가능했다. 이에 여권을 받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설사 여권을 받는다고 해도 반공연맹(현 한국자유총연맹)의 반공·방첩 교육을 거쳐야 했다. 해외출장을 할 경우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무역영어 자격증까지 취득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해외여행을 나간다고 한다면 부유층이나 고위직으로 인식하게 됐고, 반공이 투철한 사람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인 1981년 여권법이 개정되면서 해외여행 추천제 대신 복수여권이 발급 받을 수 있게 됐고, 1983년 처음으로 관광여권이 발급됐지만 50세 이상 장노년층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해외여행은 꿈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부모님 비행기 태워드리는 것이 자녀의 가장 큰 효도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올림픽 등으로 해외여행 자유화 움직임
하지만 올림픽을 치르고 민주화를 거치면서 1987년 신청요건 완화, 관광허가 연령의 확대가 이뤄졌고, 1988년 40세 이상 관광연령 확대, 부부동반 동시 여행제한 완화, 상용여권의 복수여권 발급 등이 이뤄졌고, 1989년 여권법 시행령 개정으로 관광 목적 출국 허용 연령 기준을 철폐하면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이뤄졌다. 해외여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해외여행자수를 감당하지 못하자 1992년 6월 1일부터 반공교육 이수의무도 폐지됐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나라가 빚을 진 상태에서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당시 외환위기가 오게 된 배경으로 무분별한 해외여행을 꼽기도 했다.중저가 항공사의 등장
당분간 해외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2000년도 중반부터 저가 항공사, 패키지여행, 저렴한 호텔 등이 나오고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가까운 나라를 대상으로 여행하는 저렴한 여행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해외여행 관광객들도 대규모 인원이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2~3인 규모로 움직이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부담감이 상당히 낮아졌다. 이러다보니 제주도를 여행하는 것보다 해외여행이 더 저렴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섬으로 갇혀진 우리나라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여행비용이 비싼 이유는 분단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섬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나 비행기를 반드시 이용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여행경비에 뱃삯이나 비행기 요금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버스나 기차 등을 통해 다른 나라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여행 경비가 다소 저렴하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열차를 타고 북한을 경유해서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서 유럽으로 나아가는 방식의 여행도 개발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와 북한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추진되기는 힘들다.코로나로 인한 해외여행 금지
2020년 2월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입국금지를 시행했다. 그러다가 오미크론이 확산되면서 많은 나라들이 빗장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에 보복소비가 작동되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외여행 비용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일부 사람들은 해외여행 자체를 하지 않는데 이는 언어 문제, 이동시간에 따른 불편함,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잇다.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충분한 경제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내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