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그리고 주식회사
2023-04-01 어기선 기자
스페인과의 독립전쟁
16세기 스페인 펠리페 2세는 무적함대를 바탕으로 유럽을 가톨릭으로 재통합하려고 했다. 이에 계속 전쟁을 일으켰고, 식민지였던 네덜란드에게 상거래에 대한 10%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네덜란드는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80년간 진행됐다. 연방제였던 네덜란드의 각 지역 통치자들은 독립전쟁으로 인해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 놓이게 됐다. 지방 통치자들은 돈이 부족했지만 민간에서는 청어잡이로 인해 부자가 된 어부들이 생기게 됐고, 이 부자가 된 어부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영국이 중앙집권적 권한을 갖고 동인도 회사를 만든 반면 네덜란드는 민간이 동인도 회사를 만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양의 항로를 독점하고 있던 포르투칼이 스페인 편에 서자 네덜란드는 향신료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됐다. 이에 네덜란드는 독자적으로 동방 항로를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민간 주도 동인도 회사 설립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네덜란드는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라 지방분권 체제이기 때문에 강력한 동인도 회사를 만들지 못했고, 민간에서 동인도 회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연방정부는 민간이 동인도 회사를 만드는 것을 용납했다. 연방 정부느 대신 동인도 회사가 군대를 가지는 것을 허용하고, 무역권이나 식민지 통치권 등을 동인도 회사에게 부여했다. 그리고 동인도 회사에 세금을 거둬들이는 방식을 취했다. 다만 민간이 동인도 회사를 만들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민간 자본을 끌어 모아 동인도 회사를 만들 필요가 있었고, 이에 설립된 동인도 회사는 민간 자본을 끌어 모으기 위해 증서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동방항로를 개척해서 향신료를 구해서 네덜란드에 와서 팔면 이익이 남고, 그 이익을 나눠준다는 증서였다. 당시 동방항로를 개척하고 향신료를 구해서 네덜란드에 파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에 투자를 해서도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성공을 한다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민간 자본은 동인도 회사로 몰리기 시작했다.주식거래소 개설
동인도 회사는 민간 자본가에게 증서를 나눠주기 시작했고, 그것이 주식의 시초가 됐다. 처음에 동인도 회사는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영국에 동인도 회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네덜란드 주정부들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동인도 회사들에게 합병을 해서 하나의 동인도 회사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동인도 회사들도 우후죽순으로 동인도 회사가 생겨나면 결국 이익을 얻지 못하고 영국에게 제해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동인도 회사를 하나로 통합했다. 동인도 회사에 투자한 민간 자본가들은 오랫동안 투자금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타국으로 떠난 배가 돌아오기까지는 최소 2~3년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배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민간 자본가들은 배당금은 물론 투자금도 고스란히 날릴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에 동인도 회사는 회계 담당자를 내세우고 회사 주식을 매매할 수 있는 주식거래소를 설치하게 됐다. 주식을 사고 시은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주식 가격기 상승하고,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주식가격이 내리는 식의 주식시장이 형성됐다. 동인도 회사의 주식은 네덜란드 자국민에게만 허용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허용하면서 유럽의 모든 자본들이 네덜란드에 몰려들었다. 드디어 인도로 갔던 배들이 향신료와 도자기를 가득 싣고 암스테르담 항에 들어왔고, 민간 자본가들은 엄청난 부자가 됐다.외국인 투자자에게도 허용
그 소식을 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암스테르담으로 대거 몰리게 되면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식민지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영국 동인도 회사와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면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삼았다. 일너 이유로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서쪽인 인도와 무역 거래를 하고,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와 일본 등에 거점을 두고 무역 거래를 했다. 전성기인 1670년대는 150척의 상선, 40척의 군함, 5만명의 직원과 1만명의 군대를 거느릴 수 있었고, 배당금은 액면가 40%에 해당했다. 하지만 1660년대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중국 무역이 대폭 감소했고, 일본 에도 막부가 쇄국 정책을 고수하면서 은 수입이 감소하면서 동인도 회사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쟁 회사인 영국 동인도 회사가 신대륙에서 향료, 설탕 등의 수입을 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에서의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했다.이런 이유로 18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파산 상태에 이르고 나폴레옹에 의해 네덜란드에 세워진 괴뢰국인 바타비아 공화국 정부에 의해 국유화됐고, 1799년 동인도 회사는 해산됐고, 회사 소유 식민지는 네덜란드 직할령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