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여의도 벚꽃축제 그리고 윤중제 공사

2023-04-05     어기선 기자
사진=파이낸셜리뷰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는 여의도라는 섬이 있다. 말이 섬이지만 이제는 여러 다리가 연결되면서 섬인지 모를 정도이다. 그리고 매년 4월초가 되면 여의서로에는 벚꽃축제가 열린다. 최근 몇 년간의 코로나19 때문에 축제가 열리지 않았지만 올해는 축제가 열리는 대신 개방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구경할 수 있다. 여의도 벚꽃축제는 윤중제 공사와 연결된다. 사실 윤중제는 일본어이기 때문에 순화를 해야 했고, 이에 ‘여의서로’라는 이름이 나왔다.

과거의 여의도

옛날에는 여의도를 잉화도(仍火島), 나의도(羅衣島), 여의도(汝矣島) 등으로 불렸는데, 이 명칭들의 유래는 ‘넓은 섬’이라는 뜻이다. 여의도가 물에 자주 잠기는 탓에 ‘너나 가져라’는 뜻의 ‘너의 섬’에서 비롯됐다는 민간어원도 있지만 실상 물에 잠긴 사례가 많지 않았고, 조선왕조 내내 국영 목장으로 사용됐다. 농사에는 별볼일 없었지만 섬 서북쪽에 가축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국영목장이 조성됐다. 일각에서는 궁녀들의 화장터였다는 속설이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일제강점기에서는 비행장으로 사용했다. 다만 장마철에 침수되는 문제 때문에 김포비행장과 함께 사용했다. 그리고 1960년대 여의도 비행장이 폐쇄되면서 1970년대 신시가지 개발 목적으로 여의도 개발 계획을 세운다.

와주테이가 윤중제로

핵심은 자주 침수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1968년 6월 1일 오전 10시 섬 둘레 7천533m를 잇는 윤중제(輪中堤) 준공식이 열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제방의 40만 3천1장째 화강암 블록에 ‘한강개발’이라는 휘호를 새겨넣었다. 윤중제는 일본어 ‘와주테이(わじゅうてい)’를 그대로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으로 실상 우리말로는 ‘방죽’으로 불려야 한다. 이렇게 방죽이 만들어지면서 침수가 되지 않았고, 여의도 개발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방죽을 쌓은 것이 오늘날 여의도 개발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벚나무 심어

여의도에 방죽이 만들어지게 되자 재일교포 한 사람이 벚꽃 묘목 2천400주를 서울시에 기증하게 됐고, 박정희 대통령은 윤중제에 심으라고 지시를 내리게 됐다. 윤중제에 벚꽃이 심어지게 되면서 벚꽃놀이 명소가 됐다. 사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전국 곳곳에 벚꽃을 심었다. 하지만 해방이 되면서 벚나무는 모두 베어졌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들어서면서 전국 곳곳에 벚나무가 다시 심어지게 됐다. 일설에 따르면 미국이 1910년 일본 정부로부터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선물받아 워싱턴DC에 벚나무 공원을 만들었는데 매년 벚꽃축제가 열린 점을 박정희 대통령이 착안해서 윤중제 도로 따라 벚꽃나무를 심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일제의 잔재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벚꽃은 일본의 국화가 아니다. 황실에서 사용한 문양이고, 군국주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정식적으로 국화는 아니다. 또한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 제주왕벚나무에서 유래된 것이 오늘날 일본의 벚나무 품종이라는 점에서 일제의 잔재냐 여부는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다만 ‘윤중로’라는 것은 일제의 잔재가 맞기 때문에 1986년 ‘윤중제’에서 ‘여의방죽’으로 서울시는 고쳤다. 그리고 여의서로로 이름을 고쳤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윤중로’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윤중로라는 단어는 이제 사라진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