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노인빈곤 OECD 1위, 과거 노인 복지 정책은

2023-04-07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우리나라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벅 빈곤 위험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6세 이상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40.4%로 18세부터 65세 빈곤율 10.6%의 4배에 달했다. 상대적 빈곤율은 중위소득 50% 이하 소득 인구의 비율이다.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 위험도는 367%로 위험도 상위 국가 250%인 스위스, 153%인 일본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정부가 노인 복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의 노인 복지 역사는 상당히 깊다.

삼국시대에도 노인 복지 기록이 남아있어

노인복지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노인복지로 사궁보호(四窮保護)가 있는데 사궁은 환(鰥), 과(寡), 고(孤), 독(獨)을 말한다. 환은 늙고 아내가 없는 홀아비, 과는 늙고 남편이 없는 여성, 고는 어리고 부모가 없는 사람, 독은 자녀가 없는 늙은이를 말한다. 신라시대 유리왕은 11월 순행 중 얼어 죽을 지경의 노인을 발견하고는 “나의 죄”라면서 옷을 벗어 덮어주고 음식을 먹였다는 기록이 돼있다. 또한 관리들에게 명해서 늙고 병들어 자활할 수 없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는데 이것이 노인복지의 최초 기록이다. 백제에서는 다루왕 11년 10월 왕이 동서부 지방을 순행하던 중 가난하고 자활할 수 없는 사람에게 곡식 2섬씩 줬고, 고구려의 경우 태조 66년 8월 늙고 자활할 수 없는 사람을 위로해 입을 것을 준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는 보다 본격적으로 노인 복지를 하기 시작했는데 양로의 기록이 있다. 양로란 나라에서 노인을 대접하는 행사를 의미한다. 행사에서 음식과 옷을 베풀고 벼슬을 내렸다. 고려사절요에는 왕이 친히 구정에서 향연을 베풀기도 했고, 80세 이상인 자를 모아 친히 술과 음식, 옷, 다과를 주기도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태조는 80세 이상의 부모가 있는 자는 군역을 면해주기도 했다.
사진=픽사베이

유교 국가 조선시대는 노인 복지의 천국

조선시대는 노인 복지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였다.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충효 사상이 근간이 되면서 노인 복지에 대해 상당한 신경을 썼다. 유교적 통치 이념을 위해 노인우대 정책을 구사한 것이다. 효를 바탕으로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것을 승화해서 임금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노인 복지 정책을 구사한 것이다. 노인 복지는 아예 나라의 법전 경국대전에도 나온다. 반역, 음모 또는 역적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들과 손자․아내와 첩 또는 노비로서 부모나 가장을 고발하는 자는 교수형에 처하며, 노비의 아내나 남편으로서 가장을 고발한 경우에는 장형(杖刑) 100대와 유형 3천리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다. 노인이나 어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규정이다. 노인을 위한 벼슬도 있었는데 노인직 제수와 가자제였다. 노인직은 일정연령 이상인자로서 이미 벼슬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는 품계를 올려주고 벼슬이 없던 사람에게는 새로 벼슬을 주는 제도였다. 세종 때 벼슬을 하지 못한 양인과 천민에게도 노인에게 벼슬을 내렸고, 성종 대는 경국대전에 명문화를 시켰다. 이런 이유로 정조18년(1794)에는 노인직의 수가 7만 5천145명이 됐다. 노인 복지의 또 다른 제도는 시정·복호제이다. 늙은 부모를 잘 모시도록 병역을 면제해주거나 부역을 면제해주는 제도이다. 70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적용됐다. 이는 양반이나 천민이나 모두 해당했다. 이와 더불어 사형 혹은 도형 혹은 유형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러도 고령의 부모나 ​조부모가 있으면 봉양하라는 의미로 사면을 하거나 형벌을 가볍게 해줬다. 이는 철저하게 유교적 충효 논리를 백성들에게 심어줘서 왕권강화를 노린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일제강점기 노인 복지

일제강점기 들어서면 노인복지를 운영하게 되는데 1944년 조선구호령이 공포됐다. 조선구호령은 일보에서 실시되던 구호법에 모자보호, 의료보호 등을 부분적으로 추가해 확대시행한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노인 복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주로 지배계급인 일본이 통치수단으로 노인 복지를 구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노인 복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꺼치고 산업화에 들어서면서 국가재건과 경제개발정책이 우선되면서 노인복지는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노인 복지는 주로 자녀가 담당해왔다. 하지만 자녀들이 대도시로 돈을 벌러 나가면 노인은 고향에 남아 농업에 종사했다. 그러다보니 국가도 노인 복지를 외면했고, 자녀들도 노인 공경을 외면하게 되면서 노인은 소외되기 시작했다. 다만 1970년대 들어서면서 노인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1979년 보건복지부 전신인 보건사회부가 노인복지법 초안을 작성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정지표로 복지사회건설을 내세우면서 노인 복지가 점차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