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스파르타의 부흥과 몰락, 부의 불평등에 대해

2023-04-08     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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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였다. 도시 국가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등이 있었다. 스파르타는 영화 300으로도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 국가였다. 스파르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강력한 전사들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원래 스파르타는 그리스에 살던 민족이 아니었다. 기원전 12세기 ‘도리아인’이 미케네 지역으로 몰려왔고, 미케네 문명은 그렇게 몰락하게 된다. 트로이 전쟁은 ‘미케네 문명’과 ‘트로이 문명’이 충돌한 것으로 이때 발생한 전쟁을 묘사한 것이다. 도리아인들이 정착한 곳 중 하나가 스파르타이다. 스파르타가 침략으로 시작한 역사이기 때문에 주변 원주민들을 복속시켜야 했다. 원주민들을 복속시키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90% 노예 통제하기 위해

결국 원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스파르타인들은 전사가 돼야 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통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스파르타 시민은 10%였고, 노예가 90%였다. 10%의 스파르타 시민들이 90% 노예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결국 막강한 군사력을 가져야 했고, 스파르타 시민들은 전사가 돼야 했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7살이 되면 집단학교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데 그것이 아고게(Agoge)이다. 오죽하면 오늘날 혹독한 교육을 ‘스파르타 교육’이라고 하겠는가. 그만큼 혹독한 교육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가학적이면서 엄청난 인내를 요하는 교육이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면 전사가 됐으며, 그들은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부의 평등을 이뤄내는 것이다. 왕이든 귀족이든 일반 시민이든 같은 학교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았고, 그리고 성인이 돼서도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사유재산의 개념이 없었다. 왕도 나무로 지은 집에 생활했고, 귀족도 그러했고, 일반 시민들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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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도시 국가의 대표격이었지만 아테네는 일찌감치 해상무역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반면 스파르타는 가난한 나라였다. 단지 그들에게는 ‘싸우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페르시아가 3차례 침략을 했을 때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페르시아와 싸워서 승리를 했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맺고,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는다.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각각 해상과 육지에서 페르시아를 맞아 승리를 한다. 이후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제국’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오늘날 미소 냉전 시대와 같이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스파르타 역시 아테네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각각 동맹국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요구했다. 아테네가 몰락한 이유도 동맹국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요구하면서 동맹국들이 반발을 했기 때문이다. 스파르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는데 스파르타는 막강한 육군을 갖고 있었지만 해군이 약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견제만 할 뿐이지 20년이 흘러가기에 이르렀다. 이에 스파르타는 초조해지면서 해군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군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이에 동맹국들에게 강제로 비용을 분담시켰다. 게다가 페르시아는 아테네에 복수를 한다는 의미로 스파르타에 막대한 자금 지원을 하기에 이르렀고, 동맹국과 페르시아로부터 흘러들어온 막대한 자금으로 해군을 꾸리게 됐다.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돌아가게 된다. 그것은 동맹국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강제로 부담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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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불평등, 스파르타 무너뜨려

아테네가 무너지면서 아테네 문화를 흡수하게 되면서 과거와 같이 공동체 생활이 무너지게 됐다. 그것은 곧 부패의 시작이었다. 동맹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막대한 자본은 부패하게 만들었다. 또한 페르시아로부터 황금이 들어오면서 스파르타 거리는 황금으로 넘쳐났다. 그러면서 스파르타 시민들은 더 이상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부패로 인해 사회가 썩기 시작했다.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장군들은 현지에서 뇌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돈의 맛을 알게 된 스파르타는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맹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자금이 과거에는 공동체를 운영하는데 사용됐다면 이제는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한 삶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삶이 됐다. 스파르타 시민 중 고작 3%만 전체 토지를 독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자식들을 아고게에 보낼 교육비를 지불하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스파르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의 몰락은 스파르타 인구의 감소가 되고, 그것은 전사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전사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최강 육군의 몰락을 의미하며, 그것은 외부 침입으로부터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스파르타가 몰락한 레욱트라 전투에서 왕인 클레옴브루투스가 전사하지만 스파르타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장에서 죽는 것을 가장 큰 명예로 생각했던 스파르타 군인이었지만 더 이상 스파르타 군인에게는 그런 명예는 없었다. 더욱이 레욱트라 전투에 참가한 스파르타 동맹군은 1만명이었지만 순수 스파르타 시민은 1천명에 불과했다. 스파르타 의회는 왕을 버리고 도망친 스파르타 시민들을 처형시키려고 했지만 처형시킬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마저 처형하면 스파르타가 지도 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결국 스파르타는 BC 146년 로마에 의해 몰락하게 됐다. 스파르타가 한때 부의 평등을 외치면서 명예를 중시하는 삶을 살았지만 부패가 되면서 부의 불평등 현상이 발생했고, 그것이 스파르타를 몰락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