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운산금광 그리고 ‘노다지’
2023-04-14 어기선 기자
일본의 야욕, 미국의 개입 절실
알렌은 청일전쟁 직후 친일 내각이 들어서는 것을 경계하면서 친일 내각 대신 친미 내각이 세워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알렌은 미국이 한반도에 관심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조선왕실을 설득했고, 명성왕후 역시 알렌이 그동안 한반도에서 해왔던 공로가 있기 때문에 평안북도 운산광산 채굴권을 넘겨줬다. 이에 알린은 미국의 모스가 운산광산 채굴권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인 움을 줬다. 그리고 미국에 파견됐던 박정양을 총리대신으로 앉히면서 친미 내각이 들어섰다. 친미내각이 들어서자 일본은 위협을 느껴졌고, 친미 내각을 만든 명성왕후를 시해하기에 이르렀다. 모스는 자본금 10만 달러를 들여 조선개광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당시 운산광산은 도로나 물류상태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투자금 10만달러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1897년 헌트는 웨스트 버지나에서 자본금 500만달러를 들여 ‘동양합동광업주식회사(Oriental Consolidated Mining Company: OCMC)’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일제가 중일전쟁으로 미국 자본의 자국 송금을 제한한 1937년까지 30여 년 동안 자본금 투자의 3배에 달하는 수익 당시 시세로 1천500만 달러를 남겼다.
하루아침에 빼앗긴 채굴권
운산금광은 엄청난 금맥을 자랑했다. 운산금광은 한때 세계 최대의 금 보유량을 자랑하기도 했을 정도로 엄청난 금을 보유한 금광이었다. 그런 금광이 하루아침에 미국으로 넘어가고 미국 회사가 금을 채굴하기 시작하면서 지역 주민들로서는 금을 구경하고 싶어 하면서 철조망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이 “금광석을 건드리지 마라”는 말로 ‘No Touch’라고 했고, 그 지역 주민들은 ‘금’을 영어로 ‘No Touch’라고 부르는가 보다 생각하게 되면서 ‘노다지’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건드리지마”를 영어로 하면 ‘Don't Touch’인데 ‘No Touch’로 한 것은 무엇일까. 사실 ‘Don't Touch’는 알아듣기 힘든 영어였다. 그러나 ‘No’라고 하면 알아들었기 때문에 미국인도 콩글리쉬인 ‘No Touch’로 발음을 한 것이고, 그것이 노다지가 된 것이다.1900년이 가장 유력
노다지라는 단어가 생겨난 시기는 1900년이 가장 유력하다. 해당 년도 11월 1일 알렌이 광산회사에 황금을 건드리는 조선인에게 태형으로 다스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만큼 운산금광의 미국인과 금광석을 손대려는 조선인들이 충돌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