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칼럼] 삼성그룹의 도전과 위기(1)

인재제일경영으로 세계적기업으로 도약

2023-04-15     정인준
[파이낸셜리뷰] 일제식민지 시절 이병철 창업주가 설립한 대구 ‘삼성상회’(1938년 3월 1일)는 해방 후 1948년 11월 서울 소재 ‘삼성물산공사’로 변경 설립돼, 본격적인 국제무역을 시작, 1년 반 만인 1950년 5월에 국내 1위 무역업체로 성장했으나,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과 서울 점령 및 공산당 치하에서 삼성물산공사 전 재산을 잃었다. UN군의 북진을 기화로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의 공격으로 1951년 1월 4일 후퇴 시 이병철 사장이 피난 간 부산에서 1951년 1월 10일 ‘삼성물산주식회사’를 다시 세워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1939년 3월 일본인으로부터 인수해 경영한 대구의 ‘조선양조’ 김재소 사장이 3억원의 흑자를 비축해둔 덕분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 휴전 후 이승만 정부는 제지, 제약, 제당 업종의 수입대체 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했으며, 이병철 사장은 ‘제일제당주식회사’(1953년 8월 1일) 설립 후 3년 만에 설탕 수입대체에 성공했고, 1954년 9월 15일 설립한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의 대구 제일합섬 공장은 1957년 10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부처의 최초 국내공장 시찰로 기록됐다. 삼성물산, 제일제당 및 제일모직 세 기업은 한국 최초의 재벌이 된 이병철 창업주의 산업자본 형성과 함께 삼성그룹 역사의 서장(序章)을 열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2대 회장은 1987년 12월 1일 취임사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90년대 까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 시키겠다”고 말했으며, 이후 이회장이 이끈 27년 간 삼성그룹은 1992년 세계 최초 64MD램 개발을 시작으로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20개 분야에서 글로벌 1위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호암 이병철 창업 회장은 사업보국(事業報國-기업을 세워 국가에 봉사한다) 정신으로 사업 초기 수입대체 업종이던 생필품(소비재)에서 시작, 자본 축적 후 경공업 기술경험 기반위에 전자산업(삼성전자, 삼성NEC 등), 중화학공업(삼성 석유화학, 삼성조선 등), 반도체산업으로 이행하는 등 삼성그룹의 많은 기업을 설립했다. 호암은 ‘삼성상회’ 설립 후 와세다 대학 친구인 이순근을 지배인으로 채용, 경영을 맡겨 단기 간에 급성장했는데, 송사(宋史)에 나오는 “의심스러운 사람은 채용하지 말고, 채용했다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疑人都要,用人之长不疑)”를 자주 인용했다.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호암 묘비에는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아들이고 노력했던 사나이가 여기 잠들다”가 적혀있다. 대구의 ‘삼성상회’와 ‘조선양조’에서부터 시작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책임경영을 시키는 인재제일 경영철학과 ‘능력에 따른 인재 선발’ 시스템은 삼성그룹의 특징이기도 하다. 인재제일 경영철학은 이건희 2대 회장에 이어져 “新사업을 추진할 때 일반 기업들은 자본·기술보유여부를 우선시 하는데 이건희 회장은 인력확보부터 확인하고, 비즈니스 전략과 연계한 인사는 삼성의 성장에 기폭제가 되었다.”(삼성 新경영 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패트릭 라이트교수) 이병철 회장의 가장 큰 시련은 일본 정부 차관 4,390만$을 들여와 세계 최대 단일 비료공장인 한국비료공장 완공을 앞두고 1966년 9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차남인 한국비료 상무 창희가 구속되고, 한국비료 주식 51%를 국가에 헌납하면서 경제계를 은퇴한 사건이다.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1960년 대 초 아프리카 케냐보다도 GDP가 적었던 후진국이었던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가는 민간 기업이 정치적 배경으로 법의 심판을 받은 첫 사례였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조사할 때 250억원 뇌물을 제공한 협의로 수 사를 받았던 이건희 2대 회장은 불구속 기소되어 징역2년 집행유예 3년 판결이 확정된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베이징 방문 시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이류(二流)였던 기업은 일류(出众)로 발돋움 하려 하는데, 정치와 행정은 여전히 삼류, 사류에 머물며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 정치인은 사류, 관료행정은 삼류, 기업인은 이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는데, 25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의 수준은 사류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신경영’과 ‘1등 정신’으로 혁신경영을 하면서 1990년 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액정TV로, 이후 반도체 분야를 육성하고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우뚝 선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것은 “이건희 회장의 시대의 흐름을 읽는 선견지명과 결단력이다.”(미타라이 후지오 캐논회장)

정인준 저자 약력

서울대학교 문리대 서양사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경희대학교 관광학 박사 행정고시 17회 합격 전 공보처 여론과장·외신협력관 전 주일 한국대사관 공보관 전 주영 한국대사관 공보관 전 그랜드코리아레저(GKL) 마케팅 본부장 원광대학교 행정언론학부 초빙교수 역임 한서대 호텔카지노관광학과 전임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