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좀비, 노동착취의 현장이 낳은 괴물
2023-04-15 어기선 기자
아이티 발견한 콜럼버스
1492년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의 후원을 받고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인도’라고 믿었던 중남미에 도착했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지팡구’로만 알고 있던 두 번째 큰 섬인 에스파뇰라 섬을 돌았다. 지팡구는 일본(재팬)이라고 생각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 에스파뇰라섬이 훗날 ‘아이티’섬으로 불렸다. 아이티섬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이 땅을 식민지로 삼고, 그 땅에 사는 원주민을 식민지의 노예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함께 데리고 간 ‘전염병’에 의해 그 땅에 사는 원주민들이 몰살을 당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사실상 없어지자 서구 유럽은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들을 사냥해서 강제로 아이티에 이주시켰다.부두교의 탄생
아이티섬이 프랑스 식민지가 되면서 아프리카 흑인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개인 단위로 아이티에 끌려왔다. 프랑스가 카톨릭 국가였던 시절 아이티에 사는 흑인들에게 카톨릭을 심어줬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연장자는 젊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문화를 전수하면서 카톨릭과 아프리카 전통 종교가 합치면서 새로운 종교인 부두교가 탄생했다. 그런 새로운 종교 부두교는 아프리카 전통 종교도 아니고 카톨릭도 아니게 됐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술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아이티 주술사들 사이에서는 비밀결사가 가하는 사형(私刑)의 일종으로 좀비가 탄생됐다.농장주, 부두교 주술에 주목
그런데 농장주들 입장에서는 효과적으로 흑인 노예를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부두교의 주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테트로도톡신 등이 포함된 ‘좀비 약’을 피부에 접촉시키면 사람이 거의 가사상태에 빠진다. 사람이 죽은 줄 알고 장례식을 치르게 되면 약효가 대충 풀릴 즈음 농장주들이 그 사람의 무덤을 파헤친다. 이때 피해자는 약효에서 풀려나 일어나긴 했지만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이다. 이때 독막풀 등이 함유된 또 다른 약물을 먹여 2차 약물충격을 주게 한 다음 농장으로 끌고 가서 좀비로 만들어 노예처럼 부려먹었다. 즉, 좀비 약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약물을 먹여 또 다시 충격을 받게 하고, 여기에 폭행까지 가하면서 정신이 마비된다. 약물충격+폭행에 정신적 충격까지 가하면서 피해자는 ‘온전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사상태에서 노동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일단 한번 죽은 사람으로 처리가 되기 때문에 농장주 입장에서는 과도한 노동을 시키다가 사망을 해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억은 있지만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고, 농장주에 의해 움직이는 살아있는 시신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까지 농장주들이 흑인 노예들을 이런 식으로 부려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의 경우 약물을 먹여서 성(性)노예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다.20세기 들어오면서
이런 좀비 이야기가 20세기 들어오면서 점차 대중문화에 노출됐다. 하지만 대중문화에 노출된 좀비는 아이티 섬노예 이야기가 아니라 공포물의 소재가 됐다. 느릿느릿 걸으면서 사람을 물어서 좀비 바이러스를 퍼지게 해서 물린 사람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방식을 차용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좀비 문화를 만들어내고, 여러 가지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서구 특히 미국에서는 B급 문화와 연결되면서 여러 가지 좀비 영화들이 탄생했다.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와 연결되면서
그런 좀비 문화가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새로운 좀비물을 탄생하게 했다. 미국의 좀비들은 느릿느릿 걷는 존재였다면 우리나라 좀비는 그야말로 빠른 행동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와 연결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의 나라이다. 산업화도 이뤄내고, 민주화도 이뤄냈다. 그리고 그것은 50년도 걸리지 않았다. 이런 압축성장을 이뤄낸 원동력은 바로 ‘빨리빨리’ 문화이다. 이것 역시 노동력 착취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서구의 좀비는 약물에 의한 노동력 착취이기 때문에 가사에 빠진 상태에서 노동력을 행했기 때문에 느릿느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을 해야 한다는 정신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하면된다’는 말로 압축성장에 대한 노동력 착취가 있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도 좀비가 돼서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의 좀비는 빠른 좀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