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4월 19일 영국 해군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

2023-04-19     어기선 기자
스페인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587년 4월 19일 프랜시스 드레이크 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해군이 스페인 카디즈항에서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이 사건이 1년 뒤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으로 공격을 했지만 패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됐다. 흔히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게 격파 당한 것은 1588년 여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로 그 이전해인 1587년 4월 19일 영국 해군이 스페인 카디스항을 공격하면서 무적함대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군수품 불태워

이날 프랜시스 드레이크 제독은 영국 함대를 이끌고 스페인 카디스항에 정박해 있던 상선들을 주로 불태웠다. 이들 상선은 무적함대의 보급품을 나르던 상선들인데 이것을 불태운 것이 1588년 무적함대 격파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왜냐하면 당시나 지금이나 선박을 운항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 보급이다. 신선한 물을 보급하지 못한다면 군인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물 보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수통’의 역할이 중요하다. 당시에는 오크통에 물을 보관했는데 이때 오크통도 함께 불탄 것이다. 오크통은 1년 만에 제작할 수 없었다. 최소 몇 년 이상 걸리는 것이 바로 오크통이었다. 그러다보니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출항했을 때 제대로 된 오크통이 없었고, 물을 오래 보관할 수 없었다. 이에 당시 스페인 무적함대에는 전염병 환자가 창궐하기에 이르렀다.
사진=픽사베이

1588년 칼레해전, 실상은

스페인 무적함대가 몰락한 것은 그 이듬해인 1588년 칼레해전으로 알고 있다. 당시 프랜시스 드레이크 제독이 활약했는데 실상 해적 출신이다. 당시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바탕으로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이 이를 시기하면서 해적을 노골적으로 키워나갔다. 영국은 해적들에게 스페인 상선을 공격하고, 그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줬다. 그러자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이끄는 해적이 창궐을 했고, 스페인에게는 가장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이에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이끄는 해적을 소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30만 파운드 가량의 막대한 재화를 영국 엘레자베스 1세에게 바쳤다. 엘리자베스 1세는 드레이크에게 작위와 훈장을 수여했고, 스페인은 이에 반발하면서 드레이크 처벌을 요구했지만 영국은 무시했으며 영국 해군까지 해적질에 가담했다. 그러자 스페인은 결국 영국을 치기로 결정을 했다. 이에 드레이크 제독은 1587년 4월 19일 기습적으로 스페인 카디스항에 정박해 있던 상선들을 불태웠다. 말이 영국 해군이 불태운 것이지 실상 자신이 이끌던 해적선들을 이용해서 불태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스페인은 영국으로 쳐들어가기로 결정했고, 이것이 패착이었다.

칼레해전에서 3척의 배만 손실

1588년 8월 8일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 함대가 함포전을 개시했다. 그리고 무적함대의 손실은 갤리온 1척과 카락 1척 등이었다. 신호 오인과 돌풍으로 인한 충돌뿐이었지 영국 해군에 의해 박살 난 것은 아니었다. 무적함대는 4일 간 4번의 싸움에서 모두 승리를 했다. 그리고 칼레 앞바다에 정박을 했다. 당시 스페인 무적함대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동시에 영국 해군이 화공을 펼치는 것이었다. 실제로 영국 해군은 화공을 펼쳤고, 화공을 피하기 위해 무적함대는 진형을 풀어서 넓은 북해로 분산 회피했다. 그 과정에서 무적함대는 닻을 끊어버렸다. 문제는 태풍이 덮친 것이었다. 닻이 없는 함선들은 속절없이 난파됐다. 당시 무적함대는 네덜란드의 스페인 육군으로부터 무기, 화약, 군수품을 지원받기로 돼있었지만 그것이 용이하지 않게 됐다. 왜냐하면 네덜란드에 주둔하던 스페인 원정군은 네덜란드 해군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무적함대는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화약과 무기가 고갈됐다. 결국 할 수 없이 스페인으로 되돌아 가야 하는데 영불해협에는 영국 해적들이 날뛰고 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연해를 빙 돌아서 귀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북해를 잘 몰랐던 것이 무적함대의 판단 착오였다. 무적함대는 그동안 지중해나 대서양 연해에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북해라는 차갑고 거친 바다를 처음 접한 것이다. 결국 81척의 배를 잃어버려야 했다. 칼레 해전에서 잃어버린 군함이 3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적함대는 북해를 돌아서 귀환하는 과정에서 몰락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오크통을 구하지 못했던 무적함대이기 때문에 신선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서 결국 전염병이 돌면서 선원들이 탈진했다. 이에 아일랜드 해안에 정박을 하기도 했지만 스페인 선원에 대한 현상금이 워낙 컸기 때문에 아일랜드 농민들은 아침마다 해머를 들고 바다로 나가서 표류한 스페인 선원들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이 일이었다고 한다.
사진=픽사베이

칼레해전 이후

일각에서는 칼레 해전 이후 스페인이 대서양 제해권을 잃어버리고 영국이 제해권을 쥐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스페인에게는 지중해 함대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칼레 해전 이후에도 영국 해군은 대서양에서 제해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스페인 지중해 함대는 여전히 건재했다. 이런 이유로 영국은 계속해서 해적들을 통해 스페인 상선을 노략질하는 방식을 취했다. 스페인이 몰락한 것은 30년 전쟁 등을 거치면서 네덜란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꾸준히 독립전쟁을 했고, 결국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반면 영국은 전쟁 중 자금 조달을 위해 동인도 회사 등 주식회사를 개발하면서 상업에 힘을 키웠다. 사실 스페인의 대서양 제해권을 빼앗은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네덜란드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영국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스페인은 점차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이른바 칼레 전쟁을 통해 한꺼번에 몰락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 스페인 무적함대는 오히려 네덜란드와 경쟁을 하면서 몰락을 했다. 네덜란드가 독립을 하면서 스페인이 몰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