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고려가요 쌍화점

2023-04-22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쌍화점에 쌍화 사러 들어갔더니 회회아비 내 손목을 잡더이다” 고려가요 쌍화점의 일부분이다. 이 쌍화점 노래를 두고 고려가 얼마나 글로벌한 나라였는지를 알 수 있다. 회회아비는 아라비아인을 의미한다. 이미 아라비아인은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한반도에 와서 살거나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용가의 저자가 아라비아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저 멀리 중동 국가에서 한반도로 와서 무역을 하거나 거주를 했다는 이야기다.

아라비아 상인이 흔했던 고려

고려는 해상세력국가이기도 하다. 왕건은 송악(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해상무역으로 돈을 번 호족 집안 자식이다.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정하면서 평안도 일대 호족들이 궁예 밑으로 들어갔는데 그때 왕건의 집안도 함께 복속됐다. 그 이후 왕권을 잡으면서 송악에 도읍을 만들었고, 해상무역은 활발하게 이뤄졌다. 조선시대가 외국과의 무역을 통제했다면 고려시대는 마음대로 무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벽란도에는 외국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가져온 신기한 품목을 고려인을 상대로 판매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쌍화점이라는 고려가요가 나온 것이다. 고려가요는 아라비아상인과 고려 여인의 은말한 행각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

호족들이 다스리는 나라

고려는 개국 초 호족들이 자신의 지역을 다스리는 나라였다. 지방관을 파견해서 주현을 통해 다른 속현을 다스리는 독특한 지방 지배체제를 갖췄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지방자치국가였다. 이에 중앙집권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그만한 경제성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해상무역을 통해 송악에 부를 축적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에 해상무역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해상무역의 발달은 다른 나라 상인들에게는 고려는 ‘기회의 땅’이 되기도 했다. 고려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고려땅으로 외국 상인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라비아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벽란도에 기거하면서 상업활동을 하면서 벽란도는 그야말로 엄청난 부가 축적되는 곳이기도 했다. 서역상인이라고 불리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벽란도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는 것이 쌍화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 여인도 아라비아 상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고려후기로 갈수록 토지 제도가 무너지면서 권문세족이 출현하고, 그것이 고려가 멸망하는 계기가 됐다. 비록 추정치이지만 고려시대 전세계 GDP 중에 고려가 6위였다는 기록도 있다. 물론 추정치이기 때문에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만큼 고려시대의 경제적 풍요가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