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식혜 먹은 고양이, 먹은 돈은 어디에

2023-04-29     전수용 기자
출처=파이낸셜리뷰DB
[파이낸셜리뷰=전수용 기자] 우리나라 속담에 “식혜 먹은 고양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죄를 짓고 탄로가 날까 봐 두려워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우리은행이라는 생선가게를 지키던 A씨라는 고양이가 수년간 수백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가 탄로가 나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신뢰가 생명인 은행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이다.

6년간 614억원 횡령

29일 금융권 및 경찰에 따르면 우리은행 직원 A씨가 거액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은행의 기업 매각 관련 부서에 일하는 차장급 직원 A씨는 지난 27일 밤 경찰에 체포됐다. 우리은행은 A씨가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여간 세차례에 걸쳐 614억원 가량을 빼돌린 사실을 내부감사 결과 뒤늦게 파악하고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횡령금은 우리은행이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을 결정한 지난 2010년,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으로부터 받은 계약금이었다. 과거 은행권에선 2005년 조흥은행 자금 결제 담당 직원이 공금 400억원을 빼돌려 파생금융상품에 투자를 하다 적발됐으며, 2013년 KB국민은행 직원이 국민주택채권을 시장에 내다파는 수법으로 90억원 가량을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자금 관리 체계가 엄격한 5대 시중은행의 본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횡령 액수도 2021년 한해 은행권에서 임직원의 횡령·배임으로 적발된 규모의 4배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출처=파이낸셜리뷰DB

금융당국, 현장 검사 돌입

특히, 우리은행이 10년 동안이나 이러한 횡령사실을 인지조차 못했다는 점에서 자금관리 내부 통제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은행뿐 아니라 우리금융지주와 은행에 대한 감사를 진행해온 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 역시 관리·감독 업무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고 경위를 파악해보고 내부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볼 예정”이라면서 “다만 종합검사를 해도 건전성과 시스템 위주로 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든지 내부 제보가 있지 않고서는 횡령을 발견하기는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날 우리은행 횡령 사건의 여파로 우리금융지주 주가는 장 중 한때 6% 넘게 떨어지기도 했다. 횡령 규모가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신뢰가 최우선인 시중은행에서 대규모 횡령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시장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출처=픽사베이

문제는 내부 통제 시스템 부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정확한 경위는 시간이 지나야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내부 통제 시스템이 부실했기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다수의 시중 은행은 시스템 프로세스를 생각해 볼 때 혼자서 이번 사건과 같은 거액을 인출할 수 없는 구조라고 전해진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금을 관리를 할 때 통장을 관리하는 사람이 한 명 있고, 법인 도장은 다른 사람이 관리하고 이를 또 총괄 관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우리은행 횡령사건이 법인 도장과 통장을 한 사람이 관리를 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면 허술한 관리 시스템이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여러 명이 나눠서 관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났다고 한다면 공모한 사람이 있었는지 여부도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횡령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사실이 파악됐다는 점도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때문에 당시 관리자들의 책임 소재도 문제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원덕

역대 은행장들, 관리부실 책임 피할 수 있을까

그나마 횡령 사실이 발각된 것도 미국 금융제재로 인해 이란으로 매각 대금을 송금하지 못했던 우리은행이 한미관계 개선되면서 다시 이란 송금이 가능해지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즉, 송금 제재가 지속됐다면 더 늦게 발각이 될 수 있었던 셈이다. 사건이 뒤늦게 파악 됐다는 점 때문에 횡령 당시 은행장들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은행장들 역시 관리부실 책임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우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은행장 이었던 이순우 행장을 비롯해서 이광구(2014~2017), 손태승(2017~2020), 권광석(2020~2022)행장, 그리고 현재의 이원덕(2022~) 행장까지 감독소홀에 대한 책임 문제가 불거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과거 유사한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은행장에게는 경고 조치가 내려지고 사고 관련 직원들에 대한 문책과 함께 우리은행 자체에도 기관경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권의 지배적 의견이다.

금감원도 감독 소홀도 ‘도마 위’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우리은행에 대해 종합검사를 진행했다. 당시 기간까지 연장하면서 검사를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횡령 부분을 걸러내지 못했다. 금감원의 종합검사는 대규모 인력이 금융사에 상주를 하면서 검사를 진행한다. 때문에 먼지떨이식 검사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런 종합검사에서도 횡령사건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관리 부실 문제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은보 금감원장은 지난해 8월 취임 직후 ‘검사 제도 개편’을 공언했다. 이와 관련 그는 “사전 예방적 검사를 통해 관리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우리은행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 원장의 검사제도 개편론이 무색해 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출처=파이낸셜리뷰DB

없어진 돈, 회수할 수 있나

횡령된 자금의 행방도 오리무중이다.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횡령 혐의 금액을 회수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직원 A씨는 “단 한 푼도 남아있지 않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A씨의 친동생을 포함한 A씨 일행은 이 돈을 파생상품에 투자해 전액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대리급이던 2012년 초 기업구조개선 업무를 담당하며 해당 계좌 관리 업무를 맡았다. 총 세 차례 횡령 중 첫 시도에서 약 100억원 이상을 착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모 지점으로 발령난 지 1년 만에 다시 기존에 근무하던 본점 같은 부서로 복귀해 2,3차 횡령을 재차 시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 측은 A씨가 자금을 은닉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 놓고 들여다 보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횡령금액 회수과 관련해서는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