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고시원, 하숙의 역사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고시원 화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소방청이 고시원 화재 안전관리 강화를 추진한다고 2일 밝혔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고시원 화재 사망자는 9명으로, 다중이용업소 전체 화재 사망자(17명)의 절반 이상(53%)을 차지한다.
또한 최근 5년간 고시원 화재는 243건이며, 화재 원인은 부주의 143건(58.8%), 전기적 요인 55건(22.6%) 등이다.
고시원 시설은 구조적 특성상 화재를 신속하게 인지하기 어렵고 피난 통로도 좁고 복잡해 쉽게 대피하지 못해 인명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이런 이유로 고시원 대상 화재안전관리 강화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래서 간이스프링클러 설비 설치 지원사업을 안내하고 독려할 계획이다.
고시원의 역사, 하숙으로
고시원의 역사는 하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숙의 등장은 1920년대 초라고 할 수 있다. 도심이 발달하면서 인구의 유입이 증가하게 됐고, 보다 저렴하게 도시 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숙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독신 봉급생활자들이 장기간 집을 떠나 도시 생활하면서 대부분 하숙을 이용했다. 하숙집은 학교와 가까운 일반 가정집에서 여유 있는 방을 놀리기 아까워서 돈을 받고 숙식을 제공하는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20여개의 방을 갖춘 곳도 나타났다. 이는 광복이 되면서 더욱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1950년대 초반 하숙비는 전문적인 경우에는 돈을 받았으며 1등·2등·학생으로 구분됐다. 학생은 대개 쌀 5말 정도의 현물을 받거나 그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다. 1950년대 말에는 쌀 8말까지 올랐다.
너무 가격이 오르다보니 1960년대 후반에는 식사를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가정집 하숙이 증가했다.
1980년대 폭발적인 대학 증가
1980년대에는 대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방대학들이 많이 생기면서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하숙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숙을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문화까지 만들어지면서 1980년대 하숙이라고 하면 ‘대학생들의 문화’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 이전에는 직장인들도 있었지만 주로 대학생 하숙으로 전환되면서 ‘하숙’=대학생 하숙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그러면서 하숙집을 중심으로 남녀의 연애도 이뤄지는 등 하숙집만의 독특한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침, 점심, 저녁을 특정 시간에 먹어야 했기 때문에 옆방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고, 그것이 하숙집만의 독특한 문화가 된 것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2000년대
그런데 대학생들이나 직장인들도 2000년대 들어오면서 개인주의가 팽배했다. 옆방에 누가 사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함께 모여서 밥을 먹는 문화가 점차 사라지게 됐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며 생활하는 하숙보다는 단독 생활이 가능한 원룸이 인기가 얻게 됐다.
2000대 후반 뉴타운 바람이 불면서 하숙은 사양 산업이 됐고, 그것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 고시원이다.
고시원은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구획도니 실(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을 말한다.
원래는 고시생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런 이유로 신림동 고시촌에서 유행한 방 형태였다. 하지만 점차 저렴한 방을 원하는 사람들이 장기간 거주하는 셰어 하우스(Share House) 개념으로 변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다만 최근에는 방안에 개인 샤워기, 세면대, 변기가 들어있는 곳을 원룸텔 혹은 리빙텔, 레지던스 등의 이름을 사용하는데 이들은 원룸보다 오히려 시설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다만 가격이 원룸보다 비싸다.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납부하기 때문에 당장 목돈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유용한 거주 공간이다. 하지만 대다수 고시원은 1~2평 정도의 비좁은 방이고 창문도 없기 때문에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