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대손충당금에 울고 쌓이는 예금에 웃고

2023-05-09     전수용 기자
출처=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전수용 기자] 모든 현상 뒤에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미국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상공인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 등에 따른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올해 초부터 시중은행에 부실을 대비한 대손충당금 적립을 압박하고 있으며 최근에도 더 쌓을 것을 주문하고 있어 은행권이 울상이다. 반면,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수신상품 금리를 잇달아 올리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자금이 다시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주요 5대 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이달 들어 2조원 가량 늘었다. 이와 함께 주식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국 연준(Fed)의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것) 단행으로 시중금리는 더 오를 전망이어서 안전자산인 은행으로 돈이 회귀하는 이른바 ‘머니무브’는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금융당국, “대손충당금 더 쌓아라” 압박

9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오는 6월까지로 연장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들은 정부의 조치에 따라 2020년 2조4665억원, 2021년 1조725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대손충당금은 은행이 가계나 기업에 대출을 해줬을 때 입을 수 있는 손실을 평가한 금액이다. 부연하면,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할 것을 대비해 쌓아 놓은 돈을 의미한다. 현행 은행법 제27조 1항은 차주의 채무상환능력과 금융거래내용 등을 감안해 보유자산 등의 건전성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5단계로 분류하고 적정한 수준의 대손충당금 등을 적립·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 은행은 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고정이하여신) 단계에 머문 대출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부실로 판단해 대손충당금을 쌓고 향후 부실에서 벗어나면 해당 금액을 환입한다. 금감원은 올해 초 다시 대손충당금을 더 적립할 것을 압박했고 은행들은 적립금액을 늘렸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대 은행 대손충당금은 4055억원이다. 신한은행이 928억원, 하나은행 728억원, 우리은행 729억원, 농협은행 1475억원 등 대손충당금을 늘렸다. 국민은행도 195억원을 적립했다. 은행들이 1분기에 대손충당금을 늘렸지만 금감원은 최근 다시 은행에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으라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 지난 3일 정은보 금감원장은 은행회관에서 열린 17개 국내은행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대내외 충격에서 은행이 자금 중개 기능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평상시 기준에 안주하지 말고 잠재 신용위험을 보수적으로 평가해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1분기 대손충당금을 늘린데 이어 다시 적립액을 늘여야 할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초 금감원에서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할 것을 주문해 1분기에 대손충당금을 늘렸다”며 “정부가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손충당금 적립을 압박하고 있어 얼마나 더 적립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출처=각

이어지는 기준금리 인상, 은행 예·적금은 쌓여간다

은행권이 이어지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위기에 대비한 대손충당금을 더 쌓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반면, 예금과 적금 등은 오히려 쌓여가고 있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정기예금 잔액은 660조6399억원으로 전월 대비 1조1536억원 증가했다. 정기적금은 35조9591억원으로 전월 대비 8055억원 늘었다. 정기예금 잔액은 2월과 3월 각각 8452억, 6조4454억원 줄었는데, 지난달 증가세로 돌아섰다. 3월에 전월 대비 3544억원 늘어난 적금은 지난달 증가 폭이 확대됐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주식시장의 자금이 빠져나와 은행으로 몰렸다는 이른바 ‘머니무브’ 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양적 긴축에 대한 우려와 코로나19 장기화, 우크라이나 사태, 각종 규제 영향으로 주식·부동산·암호화폐 시장 등이 장기간 조정 국면을 겪으면서 투자심리는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 사상 최고가(코스피 3316.08)를 경신했던 국내 증시는 하반기부터 장기 하락 국면에 접어들어, 지난해 말 삼천피가 무너진 뒤 낙폭을 키워 현재 2600선대로 곤두박질쳤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일평균 거래대금은 지난달 17조7000억원으로, 2020년 2월 이후 월별 기준으로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은행들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춰 예금금리를 잇달아 올리면서 수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14일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연 1.25%→1.50%)하자 시중은행들은 기준금리 인상 폭보다 금리를 더 올렸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은 지난달 18일부터 정기예금 등의 금리를 최대 0.40%p(포인트) 올렸고, 이어 우리은행과 농협은행 등도 금리 인상 릴레이에 동참했다. 특히, 은행들은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이후 대출금리는 가파르게 올리면서도 예·적금 금리 인상에는 인색하다는 비판이 확산하자 금리 인상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이다. 현재 은행권의 예·적금 최고 금리는 2% 중후반대로 변동성 장세에서 안정성을 고려한다면, 투자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는 미 연준이 지난주 빅스텝을 전격적으로 단행하면서, 한국은행도 추가 기준금리 인상 압박이 커졌기 때문이다. 연준은 지난 4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종전 연 0.25~0.50%에서 0.75~1.00%로 0.50%p 인상했다. 이번 빅스텝으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종전 1.00~1.25%p에서 0.50~0.75%p로 좁혀졌다. 금융권에서는 한국은행이 연내 연 2% 이상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소 두 번은 인상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한국은행의 5월 금통위에서 한 번 더 인상되면 은행의 예·적금 금리도 지금보다 오르게 될 것”이라며 “추가 금리인상을 기다린 대기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은행으로의 머니무브는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