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5월 11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

2023-05-11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330년 5월 11일은 로마 제묵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천도하고 새 수도의 이름을 ‘노바 로마(Nova Roma, 새로운 로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사람들은 새 수도를 황제 이름을 붙여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고, 이후 동로마 제국은 천 년 동안 존속했다. 현재 터키 이스탄불이 그곳으로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500년 동안 존속하면서 수많은 역사적 평가를 남겼다.

사두정치의 혼란, 결국 천도

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사두정치 등으로 인해 로마가 혼란을 겪으면서 제2 수도 건설을 구상했다. 324년 내전을 종결짓고 제국 유일의 황제로 오르게 된 콘스탄티누스는 새로운 수도 건설을 선포했고, 수도 완공식은 330년 5월 11일 열렸다. 현 터키 이스탄불을 제2 수도로 결정하게 된 이유는 이집트나 소아시아 등의 경제적 중심지와 문화적 중심지인 그리스를 포함해서 로마 제국 동쪽 지역에 가까우면서도 제국을 위협하던 다뉴브 강이북의 이민족 및 사산 왕조 페르시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장소를 고르다보니 비잔티움(현 터키 이스탄불)을 선택하게 됐다. 완공식 당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노바 로마(Nova Roma)’ 즉 새로운 로마라고 명명했지만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즉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렀다. 로마 제국의 수도가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서쪽 지역을 서로마제국으로, 동쪽지역을 동로마제국으로 불리게 됐다. 더욱이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 이동 등으로 인해 멸망을 하면서 동로마제국이 로마 제국의 명맥을 잇는 그런 나라가 됐다.
사진=픽사베이

동로마제국은 과연 흑역사였나

사실 동로마제국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혹독하기 그지 없다. 영국인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은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동로마제국에 대해 혹평을 했다. 동로마제국은 ‘로마’라는 이름만 빌린 짝퉁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그것은 서로마제국의 후계 즉 서구유럽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봤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대 역사가들의 평가다. 서구 역사학계의 그늘을 벗어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부터 동로마제국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로마제국이 없었다면 서구 유럽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구 유럽이 중세 유럽으로 흑역사를 품을 동안 동로마제국은 페르시아 등 아시아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문명의 발전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동로마제국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서구유럽과 아시아 교두보 역할

그것은 서구유럽과 아시아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특히 서구 유럽에게는 이슬람교 침략의 방파제 역할을 했다. 페르시아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영토 확장을 하면서 계속해서 서구유럽으로의 침략이 있어왔지만 그때마다 동로마제국이 방파제 역할을 했다. 또한 중세유럽이 기독교 교조주의에 빠지면서 그리스 로마 문화나 문명(헬레니즘) 등에 대해 배척을 할 당시에도 동로마제국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와 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후손에 물려줬다. 이런 이유로 서구 유럽이 르네상스 시기로 들어갈 때 동로마제국의 문화와 문명이 상당한 도움이 됐다. 아울러 아시아 문물(향신료 등)을 서구 유럽에 전달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서구유럽을 성장시키는 그런 역할을 해왔다. 그 중심이 바로 콘스탄티노폴리스(현 터키 이스탄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