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칼럼] 삼성그룹의 도전과 위기(5) : 호암이 선택한 마지막 사업 반도체

2023-05-11     정인준
[파이낸셜리뷰] 한국 최초의 반도체회사는 통신장비 구입업체(KEMCO)를 운영하던 재미과학자 출신 강기동 박사가 1974년 1월26일 생산 전량 반도체 수출을 조건으로 설립한 「한국반도체공업주식회사」이다. 당시 삼성계열 동양방송의 이건희 이사가 私財로 한국반도체의 캠코(KEMCO)지분 50%(나머지 50%는 미국 합작 파트너 ICII)를 인수하였으며, 1978년 「삼성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냉장고, 흑백TV를 만들던 삼성전자가 일본 전기회사(NEC)와 합작으로 삼성NEC(삼성SDI 전신)를 설립했으며, 1978년 9월 “반도체가 뭐꼬?” 하며 반도체 기술에 관심을 가진 호암 이병철과 친분이 있었던 고바야시 NEC회장은 기술이전을 거부하며 심지어 삼성전자의 자사 반도체 공장 라인 시찰을 거절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부가 컬러TV 국내 판매 및 TV 방송을 허용한 이후 1980년 대 초 반도체 수입 물량이 급증하게 된다. 삼성전자가 VCR과 컬러TV개발 후 가장 큰 골칫거리는 거의 전량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는 반도체 칩이었는데, 수급이 늘 불안하여 국내 전자산업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호암은 1982년 보스턴 대학 명예박사학위 수여 차 미국 체류 중 IBM, GE 반도체 생산라인을 시찰한 후 반도체사업 시작 필요성을 절감한 이건희 부회장의 설득에 이병철 회장은 73세에 반도체사업에 진출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호암은 “나라의 장래, 한국 전자산업이 지금처럼 부품조립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 반도체 사업을 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며 1982년 10월 스탠포드大 전자공학 박사로 IBM근무 후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이던 이인성 박사를 영입, 1983년 2월 초고밀도집적회로(VLSI) 신규사업계획서를 완성한다. 호암은 1983년 2월8일 도쿄에서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에 “왜 우리는 반도체사업을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며 반도체산업 투자를 발표(도쿄선언)했으며,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심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 사업보국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업이라 확신했다.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원은 반도체산업은 인구 1억 명, GNP 1만$, 내수판매 50% 이상이 가능한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며, 기술·인력이 없는 한국에선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고 삼성의 반도체사업을 반대했다.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 제하 보고서에서 한국의 작은 내수시장, 취약한 관련 산업,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빈약한 기술 등을 제시했다. 1983년 3월15일 호암은 “내 나이 73세,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어렵더라도 전력투구 하겠다”며 삼성의 반도체사업 진출을 공식 선포했다. 반도체사업에 뛰어든 지 1년 만에 64K D램을 개발했고,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및 일본 샤프와 기술제휴를 하고 반도체 전문가인 진대제, 권오현, 황창규를 영입하였다. 1984년 5월 기흥공장 1라인을 준공하고, 1987년 2월 호암은 “영국은 증기관을 개발해 100년 동안 세계를 제패했다”며 기흥공장 3라인 착공 지시 후 1987년 11월29일 타계하였고, 이건희 부회장에게 반도체사업 계속 당부의 유지를 남겼다. 기흥공장 3라인은 1987년 9월 착공했으나, 반도체사업의 지속적 적자로 삼성그룹은 위기를 맞게 되며, 애플과 직거래 타진 등 성과로 1988년 삼성은 반도체에서 처음으로 흑자를 실현하는데, 이는 도쿄선언 5년 만에,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 후 14년 만에 흑자경영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