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빅스텝’ 놓고 미묘한 온도차 보이는 한국은행과 KDI

2023-05-18     전수용 기자
추경호
[파이낸셜리뷰=전수용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하 연준)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25%p(포인트), 5월 초 0.5%포인트 인상(빅스텝)했다. 0.5%포인트 금리 인상은 2000년 이후 22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과 국책 연구기관인 KDI가 미묘한 온도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말로 예정된 금리 인상 회의를 앞두고 ‘빅스텝’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은 반면, KDI는 미국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을 대표하는 두 기관이 이처럼 엇갈린 의견을 보인 데에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통한 ‘물가안정’과 고금리 정책이 자칫 잘못하면 ‘경기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 ‘빅스텝’ 배제 안해

18일 한국은행과 정부당국에 따르면 이창용 총재가 빅스텝 시행 가능성을 내비쳐 금융권이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이달 26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를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지난 16일 이창용 총재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데이터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언급했다. 이날 이 총재의 말 한마디에 3년물 국고채는 장중 한때 3%대로 급상승했고, 외환시장에서 원화도 약세를 보였다. 하지만 대체로 업계에서는 26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가 아닌 0.25%포인트 수준에서 인상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와 격차가 0.5%포인트 가량 나고 있어 0.25%포인트만 인상해도 될 만큼 현재까지는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데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를 크게 올릴 때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져 여론이 크게 동요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때마다 가계의 이자 부담 규모는 약 3조3천억 원씩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KB증권 관계자는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물가 통제를 위해서라면 모든 정책을 다 펼칠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다만 국내 물가 상승률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이 총재가 언젠가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 총재도 빅스텝 실현 가능성을 두고 “앞으로 우리나라 물가 상승이 어떻게 변화할지, 성장률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좀 더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물가가 추석 등이 있는 올해 하반기에 크게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어 이때 이 총재가 물가를 잡기 위해 빅스텝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정규철
 

KDI “韓 독립적인 통화정책 필요”

‘빅스텝’을 시사한 한국은행과 달리 한국개발연구원(KDI)는 미국을 따라 한국도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릴 경우 우리 경제에 경기둔화가 그대로 파급될 수 있어 국내 물가·경기 여건에 맞게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과거 미국 금리가 우리 보다 높았을 경우에도 대규모 자금유출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 동조해 급격히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KDI가 16일 발표한 ‘미국의 금리인상과 한국의 정책대응’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미국을 따라 금리를 인상할 경우 경기와 물가에 미국과 동일한 하방 압력을 받아 한국 경제 둔화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하면 일시적인 물가 상승 외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울러 KDI는 최근 한국에 높은 물가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어 물가안정을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다만 미국과 한국 간의 물가와 경기 상황 차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기준금리 격차는 용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한국 경제 상황이 물가가 지금보다 더 급증하고 경기가 과열되는 우려가 있다면 빅스텝도 가능하지만 미국을 따라 올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로 인한 대규모 자본유출은 없다고 분석했다. 1996년 6월~2001년 2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에도 한국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았지만 대규모 자본유출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 실장은 “미국은 높은 물가상승세와 견고한 경기회복세에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으며, 한국 거시경제에 대한 영향은 미국 금리인상의 요인과 한국의 통화정책 대응에 따라 상이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환율변동은 국가 간 불균형을 조정하고 대외충격을 흡수하는 기제라는 점을 감안해 자유변동 환율제도의 취지에 맞게 환율변동을 용인하고 외환시장 개입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제금융시장이 급격히 불안정해질 경우 미국 등과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이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빅스텝’을 시사한 점에 대해 정 실장은 “한국 물가가 지금보다 급등하고 경기도 과열되면 빅스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 실장은 이어 “이 총재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은 한국 경제의 내부 상황 때문이지 미국이 올려서 따라 올리겠다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