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젠틀맨 등장·산업혁명, 영국 음식 맛없는 이유

2022-05-19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영국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자국 총리가 영국 요리는 맛이 없다고 했을 정도이다. 영국 작가 제롬은 “대영제국은 자랑거리가 많다. 다만 음식들은 별로 자랑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윈스턴 처치른 “대영제국은 전세계에 여러 가지 먹거리를 공급하고 있다. 단 조리 전으로”라는 우스개 농담을 했다. 우스개 농담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영국식 주택에서 미국식 연봉을 받고 일본인 아내와 중국 요리사를 두는 사람이고, 가장 불행한 남자는 일본식 주택에서 중국식 연봉 받으며 미국인 아내와 영국 요리사를 두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영국 음식은 악명이 높다.

식재료 접할 기회 놓쳐

영국이 음식이 맛없는 이유는 중세 이전까지는 식재료를 접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후추가 인도에서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유럽으로 흘러들어가는데 영국은 알다시피 섬나라이기 때문에 가장 늦게 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청난 가격을 치러야 했다. 그러다보니 일부 귀족들만 후추를 접할 수 있었다. 향신료 혹은 조미료를 접할 기회가 부족해지면서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의 발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프랑스 등은 귀족들을 중심으로 식문화가 발달했는데 그것은 후추를 접할 기회가 영국보다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항해 시대가 되고, 동인도 회사가 영국에 세워지면서 향신료를 접할 기회가 다소 열리기 시작했지만 종교적 문제가 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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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생활의 젠틀리 계급 출현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고 영국이 점차 성장하는 시기가 되면서 영국 귀족과 평민인 요만 계급 사이에 젠틀리 계급이 출현하게 됐다. 젠트리 계급 사람을 ‘젠틀맨’으로 불렀다. 이러 젠틀리 계급은 대다수가 청교도를 신봉했다. 영국 귀족들이 ‘성공회’를 믿었다면 젠틀맨은 청교도인이었다. 이들 젠틀맨은 그렇기 때문에 엄격히 규율적인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다보니 영국 귀족들과 평민인 요만 계급 사이에 음식의 조리법을 전래해야 할 젠틀맨이 요리법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평민인 요만이 요리법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귀족들이 해먹던 요리법을 평민들이 접하게 되면서 프랑스 요리가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70~80년대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평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요리가 발달한 것과 대비된다.

엘리자베스 1세의 구빈법

또 다른 이유는 영국의 독특한 부랑아 처벌법이다. 영국은 구걸을 하기 위해서는 ‘면허’를 받아야 했다. 면허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부랑아로 치부하고 처벌을 했다. 일부 왕들은 아예 면허를 받지 않은 부랑아를 사형에 선고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1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1세 들어와서 지방영주 중심으로 면허를 받은 부랑아 숫자가 너무 늘어나면서 중앙정부의 세수가 부족해지면서 부랑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부랑아를 모아서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른바 구빈법이었다. 복지제도를 언급할 때 엘리자베스 1세의 구빈법을 이야기하는데 그 일자리가 부랑아의 개개의 특성과는 상관 없었다. 엘리자베스 1세의 구빈법에 착안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 이후 전국 부랑자를 모아서 국토건설단을 만들었다. 문제는 부랑아에 요리사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엘리자베스 1세 이전에 부랑아로 취급받아서 사형을 당하기도 했고, 이후에도 부랑아로 취급받아서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영국에서 요리사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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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이후

청교도 신앙을 가진 젠틀맨들은 점차 자본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노동자에게는 청빈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상을 심어주기 바빴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은 요리에 대한 관심을 두지 못했다. 물론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말도 안되는 노임 등으로 인해 요리에 관심을 둘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자본가인 젠틀맨 역시 청빈한 생활만 강조하다보니 요리에 대한 관심을 두지 못했다. 프랑스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 평민들이 귀족들의 요리법에 관심을 뒀다면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한 평민들은 요리가 아니라 생존을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요리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1900년대까지 이어졌다. 노동자들에게는 음식은 생존이었고, 자본가인 젠틀맨에게는 청교도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즉, 노동자나 자본가 모두 음식은 부수적인 문제였다.

제1~2차 세계대전으로 배급제

그나마 1900년대 들어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인권 문제가 제기되면서 요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것은 영국으로 하여금 배급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식재료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면서 영국 국민들로서는 요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 아니게 됐다. 특히 식당들은 식재료가 부족하게 되면서 폐업을 해야 했고, 폐업을 한 것이 결국 요리의 발달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영국 국민들은 ‘맛나게 먹는’ 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요리사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면서 영국 요리사들도 많이 배출되고 있고, 다소 음식 맛이 개선됐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