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브래지어

2023-05-26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최근 6개월간 여성들은 코로나19 엔데믹 분위기 속에 ‘편안하게 운동과 레저를 즐길 수 잇는 기능성 패션’을 선호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커머스 전문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아이템스카우트는 네이버 쇼핑 내 ‘여성 패션’ 카테고리 상위 80개 상품의 최근 6개월간(2021년 11월~2022년 4월) 매출 데이터를 분석했다. 해당 기간 전체 매출은 1조 6천억원을 기록했으며 여성의류 4596억원, 여성가방 3303억원, 여성 언더웨어/잠옷 3290억원, 여성신발 2552억원, 주얼리 1758억원, 기타악세사리 816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키워드 중에 눈에 띄게 성장한 카테고리는 ‘속옷’이다. 코로나19로 크게 위축됐던 외출이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바깥 활동이 증가하게 되면서 속옷에 대한 여성의 관심이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브래지어 이전

브래지어는 여성의 가슴 가리개였다. 고대에는 긴 천이나 가죽으로 된 가슴 고정용 밴드가 있었다. 다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슴 가리개가 있었지만 잘 사용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엉덩이와 가슴을 강조하는 코르셋을 착용했다. 과하게 코르셋을 착용하면서 여성들 중 일부는 갈비뼈가 휘기도 했다. 코르셋이 브래지어가 탄생하기 전까지 여성의 몸을 압박하고 자유로운 행동을 억압해왔다. 그만큼 여성들에게 있어 코르셋에서의 해방이 가장 큰 목표였지만 계속해서 억압을 해왔다. 브래지어는 그렇게 탄생된 것이다.
메리

메리 펠프스 제이콥 여성이 만들어

1913년 메리 펠프스 제이콥은 19살이었다. 메리가 신상 드레스를둘러보고 있던 중 깜짝 놀랄만한 드레스를 발견했는데 문제는 상체가 비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코르셋을 입어야 하는데 코르셋 입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중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중 아이디어가 번쩍이면서 손수건 두 장을 실로 꿰맸고, 코르셋에 있었던 분홍끈으로 고정을 했다. 그것이 현대적 의미의 브래지어가 됐다. 그리고 1914년 자신의 아이디어를 특허로 등록했다. 이후 메리는 손수건 브래지어 특허권을 워너 브러더스에 넘겼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메리가 발명한 손수건 브래지어는 주로 집안에서만 착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깥으로 외출할 때는 고래뼈와 분홍끈으로 만든 코르셋을 여성들이 입었기 때문이다.
메리

세계대전 발발하면서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금속이 모자르게 되고, 그러다보니 코르셋에 있었던 금속마저도 빼가게 되면서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지 못하고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에 메리가 발명한 손수건 브래지어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대량 생산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 혹은 1930년대 들어서면서 컵 사이즈가 나오기 시작했다. 브래지어가 코르셋의 압박을 탈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또 다시 여성의 가슴을 억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이 활동할 때 너무 불편했다. 이에 1977년 힌다 밀러(Hinda Miller)와 리사 린달(Lisa Lindahl), 폴리 스미스(Polly Smith) 등이 ‘Jogbra’라는 이름의 스포츠 브라를 선보였다. 그런데 스포츠 브라가 인기를 얻게 된 것은 1999년 월드컵에서 미국 여자 국가대표팀 스타 브랜디 샤스틴(Brandi Chastain)이 챔피언십 게임에서 결정적 페널티킥으로 득점하고 기쁨에 취해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스포츠 브라를 세상에 공개되면서 스포츠 브라의 존재를 전세계가 알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브래지어가 답답하다는 평가에 따라 브라렛(Bralette)이 나왔다. 브라렛은 와이어와 패드가 없는 홑겹 브래지어인데, 주로 레이스나 면 등 통풍이 우수한 소재를 사용해 만든다. 참고적으로 브래지어 후크를 개발한 사람은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다. 다만 브래지어가 발명된 것이 1913년이고, 마크 트웨인 사망은 1910년이기 때문에 브래지어를 위해 발명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크 트웨인은 의류용 후크로 발명했는데 그것을 훗날 브래지어에 적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