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급상승하는 물가·기준금리, 부상하는 ‘소프트 랜딩’

2023-05-30     전수용 기자
[파이낸셜리뷰=전수용 기자] 최근 2개월 동안 소비자물가지수가 4% 후반대 고공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26일 기준금리를 불과 2개월 만에 연 1.50%에서 1.75%로 0.25%포인트 인상을 확정했다. 한국은행이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것인데, 지난 2007년 7월과 8월에 이어 약 14년 9개월 만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당분간 물가에 중점을 두고 통화 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단기간에 걸쳐 기준금리 인상을 추진할 경우, 소비와 투자가 꽁꽁 묶이는 등 자칫 경기 침체로 이어져 오히려 물가 상승의 고공행진으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 5% 시대

30일 국회 양정숙 의원실은 지난 3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비자물가지수가 전월 대비 0.7%와 전년 동월 대비 4.8%가 상승했고 다음달에 발표할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5%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에 3.2%를 기록한 이후 9년 8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선 뒤 올해 3월에 4.1%, 4월에는 4.8%를 기록하면서, 물가 상승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공업제품 분야가 7.8%로 가장 많이 상승했고, 전기·수도·가스요금이 6.8%, 서비스 3.2%, 농축수산물 1.9% 등 서민의 대표적인 세부 품목들이 모두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등유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55.4%가 올랐고, 이어 경유가 42.8%, 차량용 LPG 29.3%, 휘발유 28.5% 등 석유품목이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양정숙 의원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공포가 심화되고 있고 경제 성장의 둔화가 이어지면서, 물가 또한 상승하는 슬로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이어 “이보다 더 심화되면 스테그플레이션과 금융 위기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빚’ 느는데 이자는 ‘고공행진’

한국은행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도에 338조5000억원이었던 은행권 개인사업자 대출은 지난 3월 기준 약 430조7000억원으로 불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개인사업자 대출과 가계대출을 합친 자영업자 전체 대출을 보면, 2019년도에 684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909조2000억원이 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던 가계대출이 감소하기 시작한 올해도 개인사업자 대출은 3월까지 매달 2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출금리가 1%p(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가 내야 할 이자는 지난해 말 대출 잔액 기준 6조4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달의 경우에도 은행권 대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5대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이 한 달 전보다 2조4900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은 지난 26일 “올해 연말 기준금리가 2.25%에서 2.50%까지 올라간다고 보는 시장 예측치가 합리적인 기대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가운데, 연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뜻을 내비쳤다. 이에 양정숙 의원은 “물가 상승률이 5%를 넘을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물가도 안정시키면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금리를 어느 초점에 맞춰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그렇다고 물가 상승을 잡겠다고 금리를 레이싱 경주를 하듯이 빠르고 강하게 올리면 경기 침체 등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기존의 통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재정정책과 정부 정책이 엇박자가 되지 않도록 더 적극적인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영세사업자 등 취약계층에 피해가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마련하고, 관세 등을 통한 탄력적인 물가조절 방안도 마련해 적극적인 ‘소프트 랜딩’ 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프트 랜딩’ 뭐길래

‘소프트 랜딩’이란 용어는 S. 마리스가 1985년 저술한 〈달러와 세계경제의 위기〉에서 미래 예측에 대한 묘사를 하면서 처음 사용됐다. 원래는 비행기나 우주선 따위의 기체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활주로에 서서히 착륙하거나 진입하는 기법을 가리키는 우주항공 용어로서 이를 경제용어로 활용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경기의 하강과 상승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는데, 경기하강시 나타나는 실업증가·투자위축 등의 여러 가지 급격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안정기로 접어드는 것을 ‘소프트 랜딩’ 또는 ‘연착륙’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경제정책이 크게 변경되지 않고 이대로 지속된다면 미국의 채무 잔고는 거액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다량의 자본유입은 있을 수 없으므로 달러가 급락하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에 의한 일시적 불황(recession) 상태에 이르러 세계 불황으로까지 파급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하드 랜딩(hard landing) 또는 경착륙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미국의 경제가 비교적 높은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상정하고 호경기의 세수 증가로 인해 재정적자가 삭감된다. 때문에 자본유입 축소 현상은 상당히 완만하게 나타나게 되므로 달러 하락, 인플레이션이나 금리상승은 소폭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소프트 랜딩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1985년 플라자 합의 후에 마리스가 우려한 시나리오 이상으로 달러가 하락했는데도 하드 랜딩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각국의 정책적인 협조에 원유가격 등 1차산업 가격의 저하라는 호조건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