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강변가요제 21년 만에 부활

2023-05-31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MBC 강변가요제가 21년만에 부활한다. MBC는 오는 9월 3일 강원도 원주시 간현관광지 야외 특설무대에서 강변가요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강변가요제 출신 레전드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강변가요제 레전드’를 개최한 것을 게기로 부활시킨 것이다. 이번 강변가요제는 만 17세 이상 신인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장르의 제한 없이 본인의 창작곡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대상 등 수상자들에게는 약 1억원의 상금과 음원 발매 기회가 제공된다. 강변가요제는 이선희, 이상은, 박미경, 장윤정 등의 스타를 배출했던 가요제로 대학가요제와 더불어 MBC의 간판 가요제였다.

엄혹한 시절 가요계는 위축

강변가요제는 1979년 만들어졌다. 강변가요제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여러 가지 시대상황이 겹친다. 우선 1972년 유신 정권이 탄생하고 긴급조치 등으로 인해 문화예술계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부르게 되면 어김없이 금지곡으로 묶였고, 건전가요를 앨범에 포함시켜야 했다. 가수 한대수의 앨범은 아예 전곡이 금지곡이 되면서 원판까지 압수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보니 기성 가수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방송가의 가요계 역시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요계 대마초 파동이 발생했다. 대형가수들이 잇따라 구속됐는데 신중현, 조용필 등등이었다. 그러다보니 가요계는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됐다. 아울러 대학생들 역시 음악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게 됐다. 미군부대로부터 LP판을 불법복제한 이른바 ‘빽판’이 유행했고, 대학생들은 그런 불법 LP판을 통해 음악을 듣고 자라났다. 당연히 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으며, 건전가요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했다.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려고 했고, 그런 새로운 음악을 표출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다.
배우

대학가요제·강변가요제 출현

이런 시대적 요구가 하나로 뭉치면서 MBC에 소속한 한 PD가 우연치 않게 제안한 것이 바로 대학가요제였다. 그렇게 대학가요제가 1977년 시작하면서 샌드페블즈 ‘나 어떡해’가 돌풍을 일으켰다.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차지하면서 많은 청년 음악가들이 나도 참가해야 겠다는 열풍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열풍을 수용할 수 있는 가요제가 더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강변가요제가 1979년 등장했다. 대학가요제는 MBC TV가 주최하는 것이고, 강변가요제는 MBC 라디오가 주최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최하는 회사가 엄밀하게 다르다.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는 방송가의 음악풍토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방송가에서는 뽕짝으로 대변되는 트로트나 통기타 가요가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송골매 등 그룹사운드가 출현했고, 창밖의 여자로 가요계에 복귀한 조용필은 1980년 신디사이저를 가미한 ‘단발머리’ 등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런 젊은 층 음악은 기성 음악에 대한 젊은 층의 변화 욕구가 분출됐기 때문이고, 그것은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1980년대 말에는 댄스음악이 출현하게 되면서 점차 힙합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출현, 그리고 가요제 몰락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갖고 데뷔하면서 가요계는 거대한 변화를 하게 됐다. 이른바 아이돌 가수라는 것이 탄생한 것이다. 기존에는 가수들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앨범제작사를 찾아가 앨범을 제작해달라고 하면 앨범제작사가 자신의 돈을 투자해 앨범을 내거나 가요제 등을 통해 데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기획사가 연습생부터 철저하게 연습을 시킨 후 데뷔를 시키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가요제 등을 통해 데뷔하기보다는 연습생들은 기획사를 직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가요제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게 됐고, 오히려 기획사 아이돌 연습생들이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요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면서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모두 폐지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