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칼럼] 삼성그룹의 도전과 위기(8) : 미·일 반도체 무역협정체결
2022-06-02 정인준
미·일 반도체 무역협정 체결
작은 반도체 칩 하나에 저항기, 축전기 및 트랜지스터를 올리고 간단하게 회로를 연결하는 반도체 기술은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Jack Kilby)와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의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의 특허신청(1959년)에서 출발하였다. 노이스는 1968년 고든 무어와 인텔을 창업, 1976년 16K D램을 개발하였다. 일본 정부는 1976년 반도체공업을 국책산업으로 지정, 초기 VLSI(초고밀도직접회로)연구 지원을 결정하고, 1977년 이후 4년 간 NEC, 도시바, 미쓰비시, 히타치 등 에 개발비 737억엔 중 446억엔을 지원했다. 일본의 民官 반도체 개발은 1977년 16K D램 개발로 이어지고, 가격경쟁력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한다. 1970년 대 후반 불경기를 맞은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설비투자를 줄이고 일본 전자업체에 D램 등 메모리 칩 제조를 맡기게 된다. 1978년 10월 후지쯔가 64K D램을 개발했고, 1980년 2월 NEC가 인텔과 거의 동시에 256K D램을 개발하자 인텔은 기술을 도둑맞았다며 억울함을 정부에 호소한다. 1980년대 초 NEC,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의 년 평균 반도체 매출액은 80억$인 반면 Texas Instrument와 모토롤라 매출은 각기 41억$, 31억$에 불과했고, 다른 미국 반도체 업체들의 년 매출은 10억$ 미만이었다. 일본이 대미 반도체 무역에서 천문학적인 흑자를 내고, 반도체 적자가 미국 무역·재정 쌍둥이 적자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일본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였다 일본의 대규모 설비투자와 양산을 통한 低價 전략으로 미국 반도체 시장을 공략해 가자 미국에서는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는 비난 여론이 일어나면서 미·일의 반도체 무역 분쟁이 일어난다. 1982년 미국 IBM, GE의 반도체 라인을 시찰한 호암과 이건희 부회장이 반도체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호암은 미·일 반도체 분쟁이 한창이던 1983년 2월8일 도쿄에서 삼성의 초고밀도직접회로(VLSI) 진출을 결정하였다는 도쿄선언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