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경주 시민의 날

2023-06-08     어기선 기자
사진=파이낸셜리뷰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기원전 57년 6월 8일은 신라의 모체인 사로국이 경주 계림 일대(서라벌)에서 건국한 날이다. 이날을 기념해서 경주 시민의 날이 됐다.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뉘게 됐고, 마한은 훗날 백제가 됐고, 변한은 훗날 가야국이 됐으며, 진한은 신라가 됐다. 진한은 여러 부족 국가들이 있었는데 그 중 사로국이 으뜸이었고, 그리고 훗날 신라로 발전하게 됐다.

6부족 연맹체

사로국이라는 이름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도 나온다. 신라의 초기 이름이다. 지증왕 때 국호를 ‘신라’로 바꿨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 유민이 6개 마을이 모여 박혁거세로 추대하면서 사로국이 탄생했다. 그러면서 진한땅 곳곳의 부족들을 복속하면서 점차 신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서라벌 지금의 경주를 바탕으로 경상도 지역을 복속하면서 점차 고대국가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것은 경주 지역이 그만큼 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혁거세로 대표되는 북방 기마 세력

일각에서는 고조선 유민들이 6부족 연맹체에서 박혁거세를 왕으로 세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박혁거세로 대표되는 북방 기마 세력(고조선 유민)이 청동기 문화에 머물러 있던 경주 분지로 들어와서 기마술과 철기를 바탕으로 토착 6부족의 지지를 얻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박혁거세 설화는 하늘에서 왔고, 나정이라는 우물에서 알을 깨고 태어났다는 점에서 경주 토박이가 아니라 외부에서 흘러왔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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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땅에서 우위를 점한 이유

사로국이 진한땅의 여러 부족 중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이는 주변의 여러 기술이나 물자 등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낙동강을 접할 수 있으며 울산이나 포항을 통해서 해상 진출이 가능했다. 이는 다른 지역의 부족들에 비해 보다 넓은 세상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빠르게 선진문물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고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보다 핵심은 경주는 분지로 돼있다는 점이다. 낙동강과 낙동강 분류인 형상강이 있기 때문에 수량이 풍부하고 주변은 구미산·단석산·금오산·토함산으로 둘러싸였다. 이는 경주평야에서 막대한 곡물이 생산될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상북도 지역은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농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지만 경주만은 예외적으로 분지로 돼있었고, 평야가 발달해 있었다. 그러다보니 경주에서 사로국이 탄생됐고, 그 사로국이 훗날 신라로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