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칼럼] 삼성그룹의 도전과 위기(9) : 1988년의 기적

2023-06-09     정인준
[파이낸셜리뷰] 삼성전자는 반도체 선진국을 따라 잡을 수 있는 경계선에 있는 64K D램과 256K D램의 개발을 동시 추진하는 “병렬 개발 시스템” 으로 선진국을 따라 잡겠다는 의지가 강했는데, 이 전략은 삼성의 강점인 ‘속도전’의 출발이 되었다. 256K D램의 본격 개발은 64K D램 개발 성공 후 3개월 만에 시작했는데 7개월 후인 1984년 9월 개발에 성공하였고, 256K D램은 삼성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64K D램의 기술적 백그라운드 없이는 256K D램, 1M D램이 나올 수 없어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64K D램부터 시작된 개발 관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의 1992년 D램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 13.5%로 12.8%에 그친 도시바를 제치고 D 램 생산 세계 1위에 올랐다 이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 선언과 64K D램 개발 10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1984년 8월 착공한 반도체 양산 기흥 2라인을 기흥 1라인의 5인치 웨이퍼보다 생산성이 높은 6인치 웨이퍼(1장에 100개 칩 생산, 생산원가 25% 절감)를 걸도록 한 것도 ‘신의 한 수’로 평가된다. 1993년 6월3일 16M D램을 양산할 기흥 5라인에 일본 NEC, 히타치, 마쓰시다 보다 앞서 선행 투자로 웨이퍼 8인치 라인을 준공하면서, 그해 메모리 반도체 전체 매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1994년 7월 5,6,7라인을 풀가동하여 16M D램을 일일 100만개 생산하면서 제조원가를 낮추면서 가격경쟁에서 유리한 지위에 올라섰고, 1994년 한국 수출 역사상 처음으로 반도체 칩 만으로 100억$ 수출을 달성하게 된다. 1984년 말 세계 PC수요가 감소하고, 1983-1984년 호황기에 시설을 늘린 반도체 선발업체들이 반도체 가격을 인하함에 따라 후발 주자로 호암의 지시에 따라 1984년 8월 기흥 2라인을 착공한 삼성의 D램 반도체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선발업체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킬비(Kilby) 특허 침해 소송으로 결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64K, 256K D램 로열티 8,500만$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등 삼성의 반도체사업은 대규모 투자비용이 발생하면서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 1985년 7월 미·일 반도체협정 체결로 미국이 1986년 7월31일 대일 반도체 덤핑 제소를 철회하고, 일본은 반도체 생산 감산과 대미 수출 감소가 진행되었다. 1987년 후반에 이르러 미국 전자, PC 시장이 국내 수요증가로 경기가 회복되고, 아울러 글로벌 경기도 회복됨에 따라 PC에 장착되던 64K 및 256K D램은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1987년 후반 주요 PC 업체들은 256K D 램을 주 메모리로 사용했는데, 미·일의 선두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1M D램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삼성전자가 뒤늦게 양산을 시작한 256K D 램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256K D 램은 공급부족으로 가격도 1달러 50센트에서 4-6달러로 급등하였다. 64K D램도 개당 30센트에서 2달러 30센트로 수직상승하였다. 삼성전자는 1988년에 64K D 램 5천만개, 256K D램 8천만개를 생산 판매해 1988년 한 해만 3,200억원의 순익을 내었으며, 삼성의 SSI가 IBM 테스트를 통과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업체 리스트에 오르게 되면서 삼성에 기적이 찾아왔다.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1988년은 삼성반도체통신과 삼성전자가 합병하고, 삼성전자가 256K D램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탄탄히 하면서 양산의 길을 나아간 해이다. 기흥 반도체 사업장 1라인(64K D램 생산)을 성공적으로 가동했지만,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의 누적적자가 1,300억원이 넘는 상황에서 임직원 모두 기흥 3라인 건설에 다시 2,800억원이 들어가는 신규투자에 망설일 때 1987년 8월6일 이건희 부회장 결단으로 호암의 마지막 참석한 공식행사가 된 기흥 3라인 건설에 착공(1M D램 양산, 3억4천만$ 소요), 1988년 10월에 완공하였는데, 이 무렵 PC붐과 함께 256K D램 품귀로 삼성전자는 적자를 메꾸고도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전자는 기흥 2-15 라인, S라인 등 총 15개 라인이 가동 중이며, 평택고덕단지에는 2017년 완공한 반도체 제1 캠퍼스(P1)와 2018년 완공한 제2캠퍼스 (P2)가 상업 가동 중이다. 30-50조원이 투자된 제3캠퍼스(P3)는 메모리·파운드리 복합첨단생산 시설로 2023년 초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 평택 반도체 공장은 2012년에 고덕 신도시 내 396만m² 산업 용지를 조성한 것으로 기흥 사업장(142만m²)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이며, 공장부지 조성에만 2조 4,000억원이 투입된 명실 공히 국내 최대반도체 생산기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