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스팸
2023-06-14 어기선 기자
제1차 세계대전 중 고안
스팸은 미국 호멜 사(Hormel Foods)에서 만든 식품이다. 일명 프레스햄 통조림이다. 스팸이란 이름은 ‘양념된 햄(SPiced HAM)’이라는 말을 줄여 쓴 말이다. 또한 스팸의 주재료인 돼지의 앞다리살과 뒷다리살인 ‘Shoulder of Pork and hAM’를 줄인 말이다. 호멜사는 1891년 미네소타주에서 조지 호멜이 설립한 회사인데 당초 고기를 수출하는 작은 정육 업체였다. 조지 호멜 아들 제이 호멜이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 주둔했던 미 육군 병참 장교로 근무를 했었는데 고기를 운송하던 도중 상관들이 너무 느리다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뼈를 분리하고 살만 공급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926년 세계 최초 통조림 햄이 개발됐다. 그런데 돼지 부산물이 나오면서 이들에 대한 처리가 골칫거리가 됐다. 버리기 아깝기 때문에 돼지 부산물에 조미료인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해서 만든 것이 바로 스팸이다. 1937년 발매했을 때는 ‘Hormel Spiced Ham(호멜 조미 햄)’이라고 불렀지만 1936년 연말 파티에서 상금 100달러를 걸고 공모전을 열었는데 배우 케네스 데이누가 스팸이라고 명명하면서 우승을 하면서 그때부터 스팸이라고 불렀다. 스팸은 매우 싼 가격에 훌륭한 맛을 자랑하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2차 세계대전 속에서
스팸이 오늘날 스팸이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군에 연합군들은 초반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모두 독일군에게 밀리면서 연합군은 그야말로 패색이 짙었다. 그러다가 미군이 참전을 하게 됐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서부전선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 듯 했지만 동부전선은 소련군은 독일군에게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장 핵심은 인력은 풍부한데 소련군을 먹여살릴 식량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때 스팸이 활약을 했다. 소련군은 스팸을 ‘루스벨트 소시지’라고 불렀다. 초반에는 스팸에 대해 열광을 했다. 혹한기에 보드카와 안주로 삼아 스팸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번이었다. 매끼 때마다 스팸이 나오면서 소련군 병사들 중에 스팸에 대해 질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소련군만 아니었다. 영국군도 그러했고, 미국군도 그러했다. 매끼마다 스팸이 올라오면서 스팸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병사들은 스팸을 일본군을 회유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스팸을 구우면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굶주린 일본군이 항복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워낙 많은 스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거꾸로 스팸 냄새 때문에 미국 진지가 들켜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영국은 스팸랜드라는 자조섞인 농담을 했고, 이것이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스팸메일이라는 말로 탄생하게 됐다.6.25 전쟁 통해서
우리나라는 6.25 전쟁을 통해서 스팸이 들어왔다. 역시 미군들에 의해 스팸이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스팸을 넣은 부대찌개도 발명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미군이 주둔한 나라에는 어김없이 스팸 문화가 발달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스팸 소비국이 된 것은 ‘흰쌀밥’ 때문이다. 사실 스팸은 그냥 먹으면 짭쪼름해서 먹기 거북하다. 하지만 따뜻한 밥 한 숟가락에 스팸 얹어서 먹으면 그만한 천국이 없다는 것은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팸을 즐겨한다는 것이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거꾸로 스팸 문화를 역수입하는 나라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