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하지(夏至) 그리고 감자

2023-06-21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하지(夏至)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절기이다. 하지가 지나고 나면 이제 낮의 길이는 매일 1분씩 줄어든다. 하지가 되면 강원도 일대는 감자 캐기가 분주해진다. 왜냐하면 감자싹이 죽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하지를 ‘감자 환갑’이라고 부른다. 하지가 지나면 장마가 시작되면서 땅속의 감자가 썩거나 너무 커지기 때문에 하지 때 캐낸 감자가 가장 맛나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구황작물로 인식됐지만 인류가 감자를 즐겨 먹은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 감자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남미가 원산지이지만

감자는 대표적인 구황작물로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일대가 원산지이다. 그리고 안데스 원주민들의 주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외면 받았던 구황작물이다. 서늘한 기후에 높은 고도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구황작물이지만 고온 다습하고, 평지에서는 병해에 엄청나게 취약한 작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맛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런 이유로 서양사람들은 물론 동양에서도 외면 받았던 작물이 ‘감자’다. 아울러 감자는 수분이 많아 무게가 무겁고 운송이 어렵다. 또한 제분 즉 가루로 처리하는 것이 힘든 작물이기도 하다. 강원도에서는 옹심이나 감자전을 부쳐 먹기도 하지만 가루로 만드는 과정이 밀가루에 비하면 엄청나게 복잡하고도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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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에 의해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인 감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에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18세기 초반 청나라를 통해 들어왔다. 감자는 아일랜드나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유럽 지역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왜냐하면 땅속에서 나오는 작물이기 때문에 악마의 작물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또한 결정적으로 맛이 ‘너~~무’ 없었다. 밍밍하고 식감도 없었기 때문에 감자를 외면하게 됐다. 현대에서는 감자에 양념 등을 통해 먹을 수 있지만 그 옛날에는 향신료는 귀족들이나 구할 수 있는 고급스런 물품이었기 때문에 감자만 먹는 것은 그야말로 곤욕 그 자체였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는 감자를 가축사료로 재배를 했다. 왜냐하면 그냥 씨감자를 들녘에 심으면 알아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들어 유럽 전역에 대기근이 발생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대기근 속에서도 풍년을 이루는 감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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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거치면서

대기근과 함께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자본가의 공장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더욱 심해졌다. 공장노동자들은 저렴한 임금에 막대한 노동력을 감당해야 했다. 공장노동자들이 생존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생선살과 감자를 튀겨 먹기 시작하면서 ‘피시 앤 칩스’ 음식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가장 저렴한 생선살과 감자로 생명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다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은 배급제를 실시하면서 음식이 부족해지게 됐다. 그런데 감자만은 배급제에서 예외를 뒀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대로 씨감자를 심기만 하면 풍성하게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1~2차 세계대전에서도 피시 앤 칩스는 배급제에서 예외가 됐다. 다만 오늘날 전세계에서 감자가 선풍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계기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영향 때문이다. 햄버거와 감자스틱은 이제 한몸이 되면서 감자의 입지가 더욱 올라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자는 19세기 들어와서

감자는 대략 1800년대 초반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감자는 조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령을 내리기도 했다. 감자는 한반도 북방 지역과 강원도 산간지역에 빠르게 전파됐다. 고구마가 18세기 들어 일본으로부터 들여와서 빠르게 남부지방으로 전파된 것과 달리 감자는 강원도와 한반도 북방 지역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는 작물이었다. 세도정치 기간에도 일제강점기에도 감자는 조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백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그냥 놔둬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하지 때 캐낸 감자에 겨우내 땅속에 묻어있던 김장 김치까지 곁들여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에서와 달리 감자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