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95년 9월 29일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한 날이다. 사상자가 대략 1500여명 정도 발생했다.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이후 2개월 만에 발생한 사고이며,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8개월만에 벌어진 사고이다.
문민정부를 ‘사고공화국’이라는 별칭을 안겨준 사건이며, 군부독재 시절 무리한 산업화의 후유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산업화에 가려진 어두운 우리 시대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부실공사와 졸속 관리
삼풍백화점 사고는 부실공사와 졸속관리가 원인이었다. 그것은 군부독재 시절 무리한 실적주의, 무분별한 개발, 관료와 기업의 부정부패 결탁, 관료의 무사안일주의 등 복합적인 요인이 한데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군부독재 시절의 산업화에 대해 미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관료와 기업이 결탁한 어두운 민낯을 담아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못하다가 결국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면서 어두운 그림자를 보기 시작했다.
압축성장의 폐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김영삼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호감도가 상당히 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부실공사 그리고 공사비 착복 인식 다시하게 돼
삼풍백화점 붕괴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사비 착복 등의 부정부패 문화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건물을 뚝딱 지어서 올리기만 하면 무조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다가 삼풍백화점의 붕괴로 인해 ‘건물도 무너질 수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건물들의 안전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사비 착복하고 공무원들의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부실공사를 하게 된 원인이 됐고, 그것이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결과로 도출되면서 부정부패가 결국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소방방재의 확장
삼풍백화점 붕괴는 소방방재의 역할에 대한 확장을 가져온 계기가 됐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소방’은 말 그대로 ‘불 끄는 역할’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았다.
하지만 삼풍백화점 붕괴를 계기로 소방방재는 ‘불 끄는 역할’ 뿐만 아니라 재난 구조, 구호 역할도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아울러 대규모 재난사태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 만들어졌고, 119 구조대의 장비도 첨단화됐다. 대표적인 것이 재난지역에 로봇을 투입하는 것도 삼풍백화점 붕괴를 계기로 이뤄졌다.
또한 삼풍백화점 붕괴를 계기로 경추고정대·척추보호장비 등 부상자를 실어나르는 기술도 점차 발전했다.
기업들도 큰 타격
삼풍백화점 위치가 서초구 부촌 동네였기 때문에 주 고객 중에 부유층이나 법조인들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대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실제로 삼성건설, 삼성전자, 제일모직, 삼성자동차 등등의 임직원들이 삼풍백화점 붕괴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LG측은 LG반도 패션 임직원과 구본무 당시 그룹 회장의 숙모 등이 희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대기업 중 현대그룹만 인명피해가 없었다고 하는데 임직원들 대부분이 계열사인 현대백화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