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칼럼] 삼성그룹의 도전과 위기(12) : 세계화 후퇴와 스태그플레이션

2023-06-29     정인준
[파이낸셜리뷰] 애니콜 신화의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 허태학 에버랜드 사장 같은 지방대 출신들이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호암이 뿌리내린 삼성의 실력 위주의 인사원칙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능력을 중시하는 삼성의 조직문화에 지역 전문가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한국의 삼성’은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지역전문가 인재육성으로 세계화

이건희 회장이 1991년 “앞으로 남미, 아프리카 후진국에도 마케팅 할 날이 올 것이다”며 도입한 지역전문가 제도 덕분에 삼성은 선진국 뿐 아니라 제3세계에도 마케팅과 브랜드 영업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지역전문가 양성을 위해 5천여명의 직원들이 원하는 80여 개 국가에서 1-2년 머물며 현지어와 문화를 익히도록 연봉 외에 1인 당 1억원의 체재비를 지원한 것이다. 해외 파견된 직원들은 일본은 엔지니어링, 미국은 마케팅 및 매니지먼트, 싱가포르, 홍콩에서는 금융경험을 쌓고 복귀하여 지역전문가로서 활약, 2018년 삼성 그룹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달성하는데 기여하면서 삼성의 글로벌화는 급진전되었다. 1990년대 태국 경영대학원을 다닌 삼성 직원은 2000년대 삼성이 태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다가오는 글로벌 경제위기

지난 2년 이상의 판데믹(코로나19), 미·중의 무역·기술 패권경쟁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후퇴,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2013년 新경영 20주년을 맞아 이건희 회장이 강조했던 ‘1등의 위기’가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이후 나타났던 스태그플레이션은 미국과 영국 등의 기준금리의 대폭인상 및 긴축정책, 세계화와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흐름 속에서 극복되어 1983년 이후 지난 40년 간 세계경제 호황을 가져왔으나, 금번 스태그플레이션은 변화하는 세계질서의 혼돈 속에서 내년과 후년에 심각한 세계경기침체의 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그룹은 2021년 초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과 8월 가석방 등 장기간 경영 공백을 극복하고 반도체 이후 신사업 투자 등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경영을 지속해 나가야하는 시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해 미국(11월), 아랍에미리트(12월,UAE) 출장에 이어 지난 6월 초 네덜란드, 독일 등 현지 사업 점검 및 반도체 장비업체 등 전략적 파트너들과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유럽 출장을 다녀온 이 부회장은 “시장의 여러 혼동과 변화, 불확실성이 많다” 며, 앞으로 삼성이 가야할 길을 기술, 인재확보 및 유연한 조직 등 3대 키워드로 정의하면서 그중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치열해지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경쟁에서 초격차 기술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건희 회장은 2011년 신년사에서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 사업 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 제품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 모자라는 부분은 기꺼이 협력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글로벌 인재를 키우고 유망기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신 바 있다. 중국이 태양전지, LED 성공에 이어 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어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2011년 신년사에서 선친이 말한 유망기술과 새로운 사업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중대한 과업이 앞에 놓여있다. 미·중반도체 전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대부분 미국이 갖고 있어, 삼성 반도체는 미국과 동반성장하는 길을 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이 1791년 美 의회에 제출한 “미국제조업에 관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안보가 제조업 역량에 달려있다’고 역설한 이래, 미국은 전통적으로 강한 제조업이 국가안보의 초석이라고 생각해왔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및 원전 등 한국이 지난 70년간 이룩한 제조업은 아시아의 개도국에서 경제력·군사력을 갖춘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에게도 국가안보의 초석이기도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화가 후퇴하는 국제질서의 변동 시기에 글로벌 질서의 재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이 지속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에서 민간주도성장으로 조속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