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토지조사사업
2023-07-01 어기선 기자
조선시대의 토지 개념
토지조사사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토지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조선시대 토지 소유권은 나라가 갖고 있었다. 지주에게는 수조권 즉 소작세를 갖고 있었고, 농민은 경작권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지주나 농민이나 모두 해당 토지를 자신의 토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농민이 지주에게 소작료를 내느냐 아니면 나라에 세금을 내느냐에 따라 소작농과 자영농으로 구분이 됐다. 이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삼국시대에도, 통일신라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토지의 소유권은 나라가 갖고 있고, 지주들에게 수조권을 부여했다. 고려말 신진사대부가 토지 개혁을 실시한 것도 당시 권문세족의 수조권을 빼앗아 다시 나눠주는 것이었지 소유권을 빼앗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제가 한반도를 먹어 치우면서 곤란한 일이 생겼다. 일제는 토지의 소유권 개념을 갖게 된 반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지주나 농민들은 토지의 소유권 개념이 없었다.토지조사사업은 지주의 소유권 인정 사업
이런 이유로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을 행했다. 토지조사사업은 지주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는 반면 소작농의 경작권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업이었다.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국을 설치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했다. 1912년 토지조사령을 공포하고 같은 해 조선민사령을 통해 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일본 민법을 적용시켰다. 그러면서 토지의 사유화가 일어난 것이다. 즉, 기존에는 토지는 국가가 갖고 있고, 지주는 수조권을, 농민은 경작권을 갖고 있는 개념이었는데 이제 ‘자기 땅’을 갖게 된다는 개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토지조사사업은 일본이 기존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려고 했던 사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사실상 토지 수탈 사업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조사사업은 사실상 토지 수탈 사업이 된 것은 농민들이 갖고 있던 경작권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지주는 수조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농민들의 경작권을 함부로 빼앗을 수 없었다. 즉, 소작료를 올리는 등을 할 수 있었지만 땅에서 농민을 쫓아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토지조사사업으로 지주의 토지 소유권이 인정되면서 해당 토지에 대한 농민의 경작권은 인정하지 않게 됐다. 농민이 갖고 있던 경작권을 빼앗아 지주에게 넘겨주면서 지주 입장에서는 그동안 농민을 땅에서 마음대로 쫓아낼 수 없었다가 이제는 마음대로 쫓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땅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대로 자신의 땅으로 알고 지냈던 농민이 어느날 갑자기 자기 땅이 아니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 역시 실질적인 토지 수탈이 되는 셈이다. 1924년의 통계에 의하면 전 농가 2백 72만 8천 9백 21호 중 1년에 수지가 적자인 농가는 1백 27만 3천 3백 26호로 64.6%가 매년 빚을 지고 살아야만 했다. 수백만의 농민이 자신이 그동안 경작을 해왔던 땅에 대한 경작권을 빼앗기면서 소작인으로 전락하거나 화전민 혹은 노동자로 전락하는 비극이 초래하게 됐다. 실제로 1930년대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농민들이 자신의 경작권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