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여름휴가

2023-07-05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무더운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몸의 열을 식히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 것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공통적이다. 우리 선조들도 여름나기 즉 피서를 해왔는데 오늘날처럼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자연적인 것에 상당히 의존했다. 현대 들어오면서 산업화가 되면서 ‘피서’와 ‘휴가’가 합쳐지면서 ‘바캉스’의 개념이 자리잡았다.

농사철 한가한 때 ‘유두절’

우니라나는 농경국가이기 때문에 농민들이 특별히 쉬는 날이 없었다. 하지만 ‘유두절’은 예외였다. 유두절은 음력 6월 15일로 신라시대 풍속에 따르면 이날 나쁜 일을 덜어버리기 위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씻었다. 이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으면 나쁜 일을 막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유두절에 흐르는 물에 머리를 씻게하는 것은 더위를 피하는 목적도 있지만 바쁜 농사철에 한가한 틈을 타서 쉬자는 의미도 있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모내기를 끝내고 장마를 겪고 난 후 벼가 자라는 시기이기 때문에 농민들로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피를 뽑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봄철에 모내기로 쌓인 피로를 풀어내자는 의미로 유두절을 만든 것이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여름휴가와 같은 것이다. 다만 현대처럼 여행을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것으로 대신했는데 그것은 어쨌든 자신의 일터를 벗어나 휴가를 즐긴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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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들의 여름휴가

농민들은 모내기를 끝내고 장마 이후 삼복더위에 유두절이라고 해서 여름휴가가 있었지만 양반들도 여름휴가라는 것이 있었다. 다만 양반의 여름휴가는 농민들처럼 따로 정해진 것은 없었다. 독서를 하다가 힘이 들면 한강에 배를 띄우거나 계곡 등에서 여름휴가를 즐겼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쓴 ‘다산시문집’에는 양반들의 피서법에 대해 씌여 있는데 깨끗한 대자리에서 바둑두기, 소나무 단(壇)에서 활쏘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뛰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 동쪽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오는 날 시 짓기, 달 밝은 밤 발 씻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탁족’이 잇는데 갓끈과 발을 물에 담아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겠다는 인격수양의 의미가 있었다. 또한 깊은 산속에서 알몸으로 볕을 죄는 ‘풍즐거풍(風櫛擧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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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후

일제강점기 거치고, 해방이 된 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여름휴가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휴가를 2~3일 정도 보장해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나마 휴가를 가겠다고 하는 직장인이 있다면 직장상사의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였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휴가라면 자신의 인근 교외로 나아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교통편이 발달하면서 점차 다른 지방으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리고 1990년대는 해외여행 자유화에 따라 해외여행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이른바 ‘호캉스’가 등장한다. 호텔에서 바캉스를 보내는 것으로 해외여행이나 지방여행으로 떠나는 비용으로 차라리 집 주변 호텔에서 럭셔리하게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되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항공요금과 숙박요금 등등이 치솟으면서 여름휴가를 그냥 집이나 인근 교외 등에서 보내는 등의 절약형 여름휴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