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적산

2023-07-06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적산은 적국이 국내 또는 점령지에 남긴 재산을 말한다. 현금성 자산과 현물성 자산 등은 물론 토지까지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 후 일본인이 남기고 떠난 재산을 뜻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적산가옥이다. 이런 적산은 미군정을 거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정부로 귀속되고, 또한 여러 경로로 불하됐다.

재산 갖고 돌아가지 못했던 일본인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면서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들은 자신의 재산을 반출하지 못했다. 남한땅에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의 재산 반출을 불허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본인들은 빈털터리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미군정이 들어서기 전에 공장이나 사업장은 노동자나 지역 인민위원회가 관리를 했지만 이 역시 미군정이 군정법령 33호를 공포하면서 일본인 재산을 귀속시킨 후 노동자 관리위원회를 와해시켰다. 그리고 자본가들을 관리인으로 임명해 관리토록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승만 정권은 귀속재산처리법을 제정했고, 대부분의 적산을 사기업에 불하했다. 이 과정이 상당히 불투명했고, 대부분의 토지와 공장이 헐값으로 넘어갔다. 이에 현재 재벌들의 상당수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시대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적산 불하를 받아 한몫 잡아 챙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시 귀속사업체의 불하에는 불하대상인 적산의 이해당사자를 우선으로 하고, 적산매각대금의 약 20%에 해당하는 계약금을 선납입 해야 하는 등의 기본조건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정치인과 커넥션이 있던 기업들은 정치인과 정권의 관료들에게 뇌물을 먹여 해당 적산의 매각대금규모를 대폭 낮추는 식으로 속여 헐값에 불하받거나, 이해당사자가 전혀 아님에도 불하받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물론 식민지 체제에 협력했던 재산가나 관련자가 정경유착으로 들러붙어 한 몫 챙긴 경우도 허다했다.

돌아간 일본인, 소유권 주장했지만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패망한 후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한반도에 놔두고 온 재산의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박정희 정권 당시 한일수교가 오갈 때 자신의 재산을 찾으려고 했다. 한일수교 당시 일본정부에서는 “한국 정부가 몰수한 일본인 자산에 대한 청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 위반이라는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한일기본조약을 맺으면서 일본 정부는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남긴 이른바 ‘적산’에 대한 청구권을 완전히 포기함을 명시했다.

적산에서 굴지 기업으로

적산에서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많았다. 필기구 제조업체 동아연필은 마사키 야마토 연필 대전공장을 1946년 우송 김정우가 인수해서 창업했다. 대한중석은 해방 후 귀속재산이 돼 한동안 공기업이 됐다가 1994년 거평그룹에 인수되면서 민영화됐지만, 1998년 거평 부도 이후 1999년 이스라엘 IMC그룹이 인수하였다가 2006년에 워렌 버핏이 인수했다. 세아베스틸의 전신인 대한중기공업은 김연규 전 회장이 자신의 직장인 관동기계제작소를 인수하여 창업했다. SK는 담연 최종건 창업주가 선경직물을 인수해 창업했고, 현암 김종희는 1952년에 한화의 전신인 ‘한국화약’을 창업한 후 1955년에 조선화약공판 인천공장을 인수했다. 대웅제약은 경남위생시험소에서 일하던 지달삼이 1945년 해방 후 일본인 소유 제약업체 ‘가와이제약소’를 인수해 시작했다. 대한제분은 1952년에 이한원 창업주가 닛폰제분(현 닛핀) 인천공장을 인수하여 창업했고, JW중외제약은 이기석이 1945년 해방 후 일본 주가이제약의 경성사무소를 인수했다. 아사노시멘트 용산공장은 해방 후 귀속재산이 돼 1958년 임주빈이 인수해 ‘한국스레트공업’을 설립했으나, 1962년에 영화업자인 김인득 동양물산 사장에게 넘어가 현 벽산그룹의 토대를 만들었다.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은 해방 뒤 미군정을 거쳐 1954년 귀속재산이 됐다가 3년 뒤 조선방직, 1962년부터 동방생명에 인수됐고, 그 후 삼성그룹의 이병철이 인수해 신세계백화점이 됐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1955년에 강경옥이 조선다이야를 인수해 만들었고, 넥센타이어의 전신 중 하나는 1942년에 일본인이 세운 흥아고무공업이었다. LS니꼬동제련의 전신 중 하나는 1936년에 일본인이 세운 조선제련이었고, 대선제분의 뿌리인 닛신제분 영등포공장은 1953년 윤석준 창업주가 세운 조선제분(현 사조동아원)에 불하됐으나, 1958년에 홍종문, 함형준, 박세정 등 5명이 이끄는 계동산업에 넘겨졌다. 대한전선은 1955년에 인송 설경동 창업주가 조선전선 시흥공장을 인수해 창립했으며, 섬유업체 전방과 일신방직의 모태인 전남방직은 김용주, 김형남 창업주가 1951년 옛 가네가후치방적(현 가네보) 광주공장을 인수해 세웠으며, 1961년 김용주는 전방, 김형남은 일신방직으로 각각 분할해 독립했다. 조선저축은행은 식산은행 지점 몇 군데를 붙여 삼호방직에 불하됐고, 해태제과는 해방 뒤 박병규 등 4명이 나가오카제과(현 나가오카상사) 용산공장을 인수해 창립한 기업이며, (주)오리온은 해방 이후 국유화된 풍국제과를 서남 이양구 창업주가 인수해 창립한 기업이다. 삼표시멘트의 전신인 동양시멘트는 이양구 동양제과 사장이 옛 오노다시멘트 삼척공장을 인수해 창립한 기업이고, 샘표식품은 박규회 창업주가 일본인 소유였던 미쓰야장유 양조장을 인수하여 창업했다. 간장 메이커 몽고식품은 김홍구 창업주가 일본인 소유였던 야마다장유를 인수해 창업했으며, 하이트진로의 전신 중 하나인 하이트맥주는 해방 뒤에 대일본맥주 자회사였던 조선맥주를 민영익의 증손 민덕기가 인수했다가 1967년에 현 사주의 선친인 박경규가 인수했다. OB맥주는 두산그룹 2대 총수 연강 박두병이 해방 뒤 쇼와기린맥주를 인수해 창립했고, 대선주조 및 일산실업의 뿌리인 대선발효는 해방 전에 일본인이 세웠다가 1945년 해방 뒤 민간에 불하됐다. DI동일은 해방 뒤 서정익 창업주가 도요방적(현 토요보) 인천공장을 인수해 창립했고, 현대제철 인천제철소는 일제 시기 세워진 조선이연금속이 해방 뒤 가동 중단 상태로 1953년에 정부에 불하되어 재가동시켰으며, 1968년 민영화 뒤 1978년에 현대그룹이 인수했다. 조선기계제작소는 해방 뒤 귀속재산이 돼 한국기계공업으로 개칭됐다가 1968년 신진그룹이 인수해 민영화됐고, 1976년 대우그룹이 인수했다가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0년 대우종합기계로 물적분할돼 2005년에 두산그룹이 인수해 두산인프라코어가 되었다가 2021년 현대중공업그룹에 인수돼 현대두산인프라코어로 사명을 바꿨다. CJ대한통운의 전신인 대한통운은 조선미곡창고(조선미창)가 해방 후 귀속재산이 되어 한국미곡창고(한국미창)으로 개칭됐다가 1968년 동아그룹에 인수돼 민영화된 것이다. 조선중공업은 미군정청 귀속 이후 정부가 인수해 1950년에 국영기업인 대한조선공사가 됐다가 1968년 극동해운이 인수했다가 1989년에 한진그룹이 인수해 한진중공업이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 중 하나가 1941년에 세워진 조선주택영단이었는데 이 회사는 1962년부터 대한주택공사가 됐다.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은 일제 때 세워진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