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조선시대 말 조공

2023-07-07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조공이라고 하면 전근대에 제후국이 황제국에 바치는 ‘예’를 말한다. 그것에는 조회 참례를 의미하는 조(朝)와 공물을 의미하는 공(貢)으로 이뤄진다. 원래는 제후국이 황제국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의미로 황제에게 예를 다하고, 그 충성을 증표하기 위해 공물을 바쳤다. 하지만 제후국과 황제국이 동아시아 국제질서로 자리매김하면서 점차 간소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제후국이 조공을 바치면 황제국은 그에 대한 답례를 했다. 이런 이유로 황제국은 조공이 골칫거리가 될 정도였다. 또한 황제국과 제후국은 조공을 통해서 서로 무역 거래를 했다. 조공이 일종의 국제 무역과 같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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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 말이 갑자기...

원래 명나라는 조공품으로 금과 은을 조선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세종시대 들어오면서 말과 포로 대체했다. 명나라는 반대급부로 사여(賜與)로 말값을 지불했다. 즉, 말을 그냥 갖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말값’을 지불해야 했다. 처음에는 말과 말값을 동시에 교환하는 방식이었지만 점차 명나라에서 말값을 먼저 지불하고 말은 나중에 줬다. 즉 선결제를 했다. 더군다나 말값도 조선에서 결정했다. 상등마는 당시 쌀 300두 정도였다. 조선은 여진에서도 말을 조공 받았는데 말값은 조선은 정했다. 이때 상등마는 쌀 30두였다. 이런 점을 비쳐 볼 때 조선은 명나라에 엄청난 폭리로 말을 팔아넘긴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명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명나라 정치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면 말값은 폭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는 말을 조선으로부터 들여왔다. 하지만 조선 입장에서도 ‘말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썩 유쾌한 거래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값이 다른 나라와 거래할 때보다 폭리를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에 말을 조공하는 것이 이익을 취하는 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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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이 조공 품목으로

명나라 때 물론 조공 품목에는 ‘공녀’도 있었다. 그것은 황제의 취향에 따라 달라졌다. 하지만 명나라를 관통하는 조공 품목은 바로 ‘말’이었다. 공녀는 명나라 어떤 황제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공녀를 처음 요구한 것도 영락제이지만 영락제가 훗날 취향이 바뀌게 되면서 단순한 공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성격의 공녀를 바쳐야 했다. 하지만 명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꾸준하게 요구했던 것이 바로 ‘말’이다. 말은 중세시대에는 전쟁물자였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탱크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 말을 조선이 아닌 명나라가 가져간다는 것은 결국 전쟁물자를 명나라에게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탱크를 미국에 팔아 먹는 것이나 마찬가자다. 그것은 조선의 국력 약화와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고려시대 당시 중국 특히 한족에 대해 고려인이 홀대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말을 요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 중 일부는 명나라가 멸망하게 된 원인 하나가 조선에 무리하게 말값을 지불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