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화장품

2023-07-07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실적이 전년대비 20% 성장해 처음으로 10조원대를 기록했다. 수입액은 1조원대로 무역수지는 9조원이 넘었고, 10년 연속 흑자이다. 해당 수치로 보면 반도체보다 오히려 더 효자 종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화장품 수출실적은 2020년 대비 21.3% 증가한 10조 5천99억원(91억 8천357만달러)으로 집계됐다. 이는 프랑스,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실적으로, 2년 연속 세계 3위의 수출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화장품 수출액 규모는 가전(86억달러), 의약품(84억달러), 휴대전화(49억달러)보다도 크다. 화장품 수출국은 153개국으로, 중화권 국가(중국, 홍콩, 대만 등) 비중이 61.3%로 여전히 높았으나 북미(미국, 캐나다 등), 일본 비중도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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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은 원시시대부터

화장은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왔다. 역사학자들은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조개껍데기에 담긴 노란 색소와 붉은 색소의 파우더를 발굴했다. 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는 스스로 치장하는 문화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곡물을 찧어서 가루를 만들고 그것을 얼굴에 바르는 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았다. 고대 이집트에도 화장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집트 무덤 벽화에도 눈 화장을 짙게 한 남녀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이들은 주로 아이라인을 짙게 그렸다. 아이라인을 짙게 그린 이유는 신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악귀가 몸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이집트는 처음에 주술적인 용도로 사용했지만 점차 미용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크레오파트라이다. 크레오파트라는 뛰어난 화장 기술을 가졌고, 우유로 목욕했으며, 알로에로 피부 수분 등을 줬다.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피부를 하얗게 하는 화장이 유행했다. 흰피부라는 의미는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높은 귀족이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얼굴을 하얗게 보이게 하기 위해 납의 일종인 백연광을 피부에 바르기도 했다. 이로 인해 고대 그리스 사람 중에 일찍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로마 귀족 여성들은 하루 일과가 화장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화장 기술이 로마시대 때 급격히 발달했다. 하지만 중세 들어오면서 금욕주의 사상이 전파되자 화장에 대해 꺼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화장 기술도 역시 퇴보하기에 이르렀다. 르네상스 당시 유럽에 화장이 다시 유행했는데 그것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 때문이다. 여왕은 천연두를 앓은 흉터를 감추기 위해 백연 가루를 엄청나게 발랐고, 여성들은 엘리자베스 1세를 따라하기 위해 화장을 하면서 대유행이 됐다.

봉선화 물 사라지기 전에 첫눈 오면

중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중국도 수천년전부터 화장을 했다. 여성은 손톱에 칠한 매니큐어에 따라 신분의 차등을 뒀다. 남성들은 전투에 나가기 전에 손톱에 물을 들였는데 봉선화로 물들였다. 이에 봉선화로 손톱을 물들인 후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없어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은 전투에 나가서 살아돌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당나라는 고구려를 침범했는데 고구려 겨울이 워낙 추웠기 때문에 첫눈이 오기 전에 당나라 군대가 철군을 하게 된다. 따라서 첫눈이 오기 전까지 봉선화 물이 들어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말은 봉선화 물을 들이고 전투에 참여했던 당나라 군사가 여당 전쟁에서 살아남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여성들은 대석이라는 광물을 벼루에 간 다음 물을 섞어 눈썹을 그렸고, 붉은 안료에 기름을 섞어 만든 립스틱을 사용하였으며 볼에는 꽃잎을 이용해 붉게 물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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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건 여성이건

우리나라는 백옥 피부를 고귀함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남성이건 여성이건 피부를 희게 가꾸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곡물을 찧어서 가루를 만들고 이것을 얼굴에 발랐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양 뺨에 동그랗게 볼연지를 그린 여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백제는 피부화장을 희고 연하게 했고, 신라는 그보다 화려하고 색감 있는 화장을 했다. 특히 화랑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화장을 했다. 화랑으로서 가장 고귀함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화장을 택한 것이다. 고려시대 들어서 짙은 화장은 주로 기생들이 즐겨했고, 귀부인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한 화장을 했다. 그리고 미안법(현대의 팩), 미안수, 꿀찌꺼기, 오이꼭지 바르기, 분세수 등 각종 화장 기법이 생겼고 화장품도 개발됐다. 화장품은 주로 매분구라는 화장품 상인을 통해 유통됐다. 명성황후는 러시아제 화장품을 즐겨 사용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현대적인 화장품은 1916년 ‘박가분’이다. 이는 최초의 화장품 브랜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납 성분 때문에 금세 폐업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서양미녀들을 기준으로 하는 메이크업이 발달했다. 화장기법이 발달하게 된 것은 TV의 보급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 컬러TV가 보급되면서 덩달아 화장기법도 보급됐다. 하지만 당시 컬러TV는 오늘날처럼 자연스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짙은 무대 화장을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그것을 따라한 여성들의 화장도 과도할 정도로 짙었다. 현재 시점으로 보면 진한 이목구비가 강조된 이른바 ‘아줌마 메이크업’이 발달한 것도 이런 이유 대문이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아줌마 메이크업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이 벌어지면서 자연스러운 청순함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BB크림으로 대표되는 화장 기법이고, 오늘날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의 화장기법은 알아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