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조직폭력배
2023-07-08 어기선 기자
조선시대 거쳐 김두한 등으로
조선시대에도 조폭은 존재했다. 주로 건달, 무뢰배, 불한당, 왈패, 왈짜 등으로 불리었다. 세조 때 권신이었던 홍윤성 무리도 조폭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임꺽정이나, 장길산, 홍길동 등 도적무리도 조폭이라고 할 수 있다. 고종이 독립협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동원한 보부상 조직도 조폭이 아니냐는 역사학자들의 해석도 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본 야쿠자가 한반도에 유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저항한다는 명목으로 토종 조폭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시장상인들을 위협하거나 보호 명목으로 금품을 강탈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구마적, 김두한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김춘삼과 같이 거지패로 조폭을 이끈 사례도 나타났다. 이들은 스스로 ‘건달’ 혹은 ‘협객’이라고 불렀는데 시장상인들에게 금품을 갈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냥 미화할 수는 없다.해방 이후 정치깡패 등장
해방이 되면서 6.25전쟁 이전에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조폭들이 적색테러나 백색테러를 자행했다. 이들은 이념의 대립 속에서 이권을 얻었다. 특히 적산의 불하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이익을 챙겼다. 6.25 전쟁 이후 부동산이나 미군 원조물자 등으로 이권과 이익을 얻어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정권과 연계되면서 조폭의 세는 더욱 커졌다.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정치깡패는 대규모 조직을 동원했으며, 각종 총기로 무장하면서 엄청나게 위협적인 세력이 됐다. 이들은 야당 인사들에 대한 암살기도, 유세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4.19 혁명으로 자유당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곧이어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에 의해 몰락했다.197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이후 1970년대 경제성장이 이뤄지면서 주로 카지노, 슬롯머신 등 도박업, 건설업, 유흥업, 운송업, 유통업, 무역업, 금융업 등 다양한 방면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조폭과 조폭들 간의 이권다툼으로 인한 싸움이 전개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사보이 호텔 사건, 속리산 카지노 사건, 워커힐 호텔 사건,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등등이 있었다. 그러다가 노태우 정권의 10.13특별선언(범죄와의 전쟁)으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이때 양은이파 조양은, 범서방파 김태촌, OB파 이동재 등이 붙잡혔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에도 조폭은 계속 존재해왔다. 2000년대가 되면서 범죄와의 전쟁으로 감옥에 갔던 주요 인사들이 대거 복귀되면서 조폭이 재건되는 움직임이 보였다. 이때는 주로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이 조폭들의 자금줄이 됐다. 하지만 부작용이 심해지면서 규제를 받고 이 사업은 몰락한다. 그러자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학교 학생회와 연계하면서 이권을 얻으려는 부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는 해외로 진출해서 해외 원정 도박을 알선하거나 성매매를 알선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과거에는 구역을 중심으로 움직였지만 이제는 전국구화돼서 인물 중심으로 조폭이 움직이고 있다. 2010년대에는 기업형 조폭으로 바뀌었다. 조폭으로 돈을 벌기 보다는 기업을 운영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많이 돈을 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조폭이라고 대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성공한 사업가 등으로 명함을 들고 다닌다. 하지만 여전히 조폭은 존재한다.우리나라에서 조폭이 쇠퇴한 이유
우리나라에서 조폭이 쇠퇴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범죄와의 전쟁 등과 같이 역대 정권 차원에서 대대적인 조직범죄 소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부패도가 많이 줄어들면서 조폭들의 설 땅이 많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정치깡패 이정재처럼 정치권과 조폭이 연계되는 것을 이제는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조폭이 설 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울러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조폭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연예오락산업, 관광호텔, 주류유통에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외국계 자본 등이 진출했기 때문이다. 연예기획사가 과거에는 조폭들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에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들어오면서 연예기획사도 전문화됐다. 이와 더불어 김대중 정부 당시 문화진흥정책의 일환으로 헐리우드식의 체계적인 영화 제작과 배급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영화관돠 멀티플렉스 체인망으로 구축되면서 조폭들은 영화판에서 밀려나게 됐다. 게다가 언론의 자유가 늘어나고 정보화 매체의 발달로 인해 조폭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점차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