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뷔페

2023-07-20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최근 고물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점심 밥값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면서 중저가 뷔페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식사와 후식까지 합치면 1~2만원 훌쩍 넘기 때문에 중저가 뷔페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중저가 뷔페에서는 식사와 후식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때문이다. 특히 저녁에는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점심 때는 한식 뷔페를 운영하는 음식점의 경우 매출이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바이킹 식사에서 유래한 뷔페

뷔페는 여러 그릇에 음식을 담고 접시와 포크, 냅킨을 따로 놓아 먹을 사람이 원하는만큼 마음대로 덜어먹을 수 있도록 하는 식사 방식을 말한다. 이는 바이킹에서 유래된 식사법이다. 이들은 기름지고 맛있는 돼지고기와 다양한 음식들을 모아놓고 배가 터질 정도로 식사를 한다. 오늘날과 비슷한 방식의 뷔페는 16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형성됐고, 19세기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다만 스웨덴 사람들은 스뫼르고스보르드(Smörgåsbord)라는 집에서 만든 음식을 펼쳐놓고 손님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뷔페의 원형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에서 Smörgåsbord 라는 스웨덴식 뷔페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스칸디나비안 클럽이 최초

우리나라에서는 1958년 스칸디나비안 클럽이라는 식당이 뷔페의 시초이다. 이는 6.25전쟁 당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삼국의료지원단이 설립한 메디컬 센터(현 국립중앙의료원)에 설치됐다. 우리나라에 의료지원에 나온 북유럽 의료진을 위해 생겨난 식당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양식당이 없었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스칸디나비안 클럽이라는 뷔페 식당을 운영한 것이다. 해당 식당은 국립중앙의료원 건물 일부에 위치하면서 수십년 동안 명맥을 이어왔다. 1970~8년대에는 상류층 식당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 당시만 해도 뷔페 식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뷔페 식당이 속속 등장하면서 경영난에 봉착하게 됐고, 결국 2012년 5월 폐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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빕스의 출현으로

1990년대 중반 빕스가 출현했다. 그러면서 ‘뷔페’와 ‘샐러드바’가 우후죽순 생겨나게 됐다. 그 이전까지 뷔페란 ‘고급 요식문화’였다. 그 이전까지는 뷔페란 돈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고급 식당의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빕스를 기점으로 중저가 뷔페 식당이 등장하면서 이제 뷔페는 누구나 출입하는 그런 식당이 된 것이다. 여기에 고깃집 무한리필 식당도 속속 등장했고, 호프집이 자구책으로 점심 때 한식 뷔페를 운영하는 음식점도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2020년부터 뷔페 식당은 그야말로 찬바람을 맞았으나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뷔페 식당의 매출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인해 외식비가 증가하자 식사와 후식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중저가 뷔페 식당에 소비자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