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국민통합’의 길, 시대정신에 올라타라

2023-08-02     백병훈
[파이낸셜리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새 정부가 제시한 국민통합은 국정 수행의 원동력으로서 가치의 공유, 복합적 위기극복, 거대담론이 아닌 실용, 자유⸱인권⸱법치⸱연대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미룰 수 없는 과업이자 시대정신으로 요약됐다. 그렇다면, 국민통합의 정수(传承)라고 규정한 우리의“시대정신”에 과연 절실함은 있는 것인지, 우리에게는 무엇으로 다가와야 하는 것인지 살필 일이다. 정치학은 역사를 진술한다. 미국의 역사학자 리차드 젠슨(R.Jenson, 1941〜)은 역사는 지나간 정치학이며, 정치학은 역사를 진술한다고 썼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과 그것이 남긴 발자취는 인간이 갖고 있는 정치행위의 또 다른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치행위 속에서 모든 국민들이 보편적 가치를 향유하기 위해 하나 되는“통합”의 명제를 전제로 할 때 역사는 더욱 빛이 날 것이다. 한마디로 통합은 통치의 이유이자, 통치의 기술이다. 그래서 통합은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였다. 그러므로 통합은 인간사회 내면에서 치열한 생의 의지가 함축되어 표출되는 갈등, 환희, 저항, 순응, 투쟁, 광기, 소외, 좌절, 혁명, 희망, 미래 등의 기제가 어지럽게 섞여 너울거리는 파도를 달래고 잠재워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기제는 ‘시대정신’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타고 언젠가는 하나가 되는 순간이어야 한다. 통합은 시대정신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의 음유시인 긴즈버그(Allen Ginsberg, 1926-1997)는 자신의 상징적 서사시<울부짖음 Howl〉에서 세상을 향해 이렇게 절규했다. 시대정신을 온 몸으로 흔들어 깨웠던 것이다. 그 날 그는 자신의 긴 장편 시를 낭독했다. “ .... 나는 보았네. 우리 세대 최고의 지성들이 광기로 무너지고..... 불안에 떨며..... 벌거벗은 채 굶주리고..... 새벽녘에 발을 질질 끌며 마약을 찾아 헤메이고.... 미친 듯이 재즈에 열광하는 것을.... 그러나 그들이 열망하는 것은 차디찬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과 하나가 되는 것.” 1955년 그 날 10월 13일.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허수룩하게 마련된 자리에서 그는 청중을 향해 시대의 암울함과 비통함을 소외된 자신들만의 언어로 비장하게 읊어 내려갔다. 침묵이 공간과 모두를 장악했다. 읽어 내려 갈수록 그 자리를 가득 채웠던 청중들은 그동안 잘 알 수 없었던 자신들의 분노와 절망의 이유를 이제 비로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는 믿었던 세상에 대한 처절한 자기고백이었다. 자신의 하찮은 신세와 참담한 존재를 오늘 당당하게 시인하고 선언한 것이다. 청중들은 그의 고백과 내면의 터질듯 한 함성에 자신을 맡겼다. 그리고 하나가 됐다. 눈물이 뒤범벅되고 모두의 심장을 때렸다. 누구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격한 감동이 모두를 전신 마비시켰다. 그들은 훗날 하나가 된 ‘비트세대(Beat Generation)’의 산파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긴즈버그의 시는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알리는 종소리였으나, 가슴시린 애가(哀歌)이기도 했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 후 환멸을 느낀 1920년대의 상실세대처럼 기성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했다. 그리고 저항과 자기파괴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했다. 1950년대 미국사회의 풍요로운 물질만능 풍조에 따른 차별, 획일화, 도덕적 무감각, 사회적 인간상실감에 대한 각성과 분노를 표출하고자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들의 외침은 잃어버린 시대에 대한 그들만의 처절함과 암울함을 훌쩍 뛰어 넘었다. ‘하나 되는 세상’을 꿈꾸는 시대정신으로 위대한 탄생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가 시대정신에 올라 탔다

이윽고 세상은 풍요속의 빈곤과 사회적 분열, 혼돈과 단절 속에서 과거의 암울한 그림자를 걷어 내는 광야의 초인(超人) 한 사람을 홀연히 불러냈다. 그는 꿈을 잃어버린 아메리카에 희망의 횃불을 치켜들어 ‘American Spirit’를 망각의 창고에서 끄집어냈다. 그리곤 시대의 아픔, 시대의 요구라는 목마름과 갈증을 시대정신에 담아 국민들의 혼을 뒤흔들었다. 그가 시대정신에 올라탄 것이다. 미국이 그를 열광했다. 세계가 존경과 부러움으로 응원했다. 그는 한 순간의 찰라와 같이 나타난 위대한 아메리카의 새벽별이었다. 세상은 그것을 ‘뉴 프론티어정신’이라고 칭송했고, 역사는 그 주인공을 ‘J. F. 케네디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보라! 이것이 시대정신의 위대함이고 파괴력이다. 케네디와 같은 순수한 열정과 애국심에 불타는 지도자가 이 시대에 절실하다. 벌레먹은 사회, 악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 저주와 증오의 사회, 분열과 투쟁의 나라라는 한국사회에서 전사회적 국민통합은 쉽지는 않겠지만 가야 할 길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세대에게 밤길을 밝히는 수고스러운 여정은 시작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누군가는 통합을 향한 시대정신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날, 긴즈버그가 “그들이 열망하는 것은 차디찬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백병훈 약력

건국대학교 비교정치학 박사 국가연구원 원장 프라임경제신문 사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