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대구 서문시장 그리고 금달래
2023-08-04 어기선 기자
꽃 꽂은 여인, 금달래
대구 서문시장에는 ‘금달래’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금달래는 1930년대 대구 서문시장에서 걸식을 하던 실성한 여인이다. 이른바 ‘머리에 꽃 꽂았다’라는 말의 원조가 바로 ‘금달래’라고 불리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머리에 꽃을 꽂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다. 금달래는 결혼을 했는데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을 받았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모함으로 몸종과 놀아났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시집에서 쫓겨났다.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친정 역시 출가외인이라고 받아주지 않았다. 그때 금달래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의지할 곳이 없었던 금달래는 풀숲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는데 끝내 죽었고, 그때부터 정신줄을 놓고 미쳐버렸다. 아이가 죽었기 때문에 아이를 기리기 위해서 여인은 머리핀을 머리에 꽂아야 했다. 하지만 머리핀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게 된 것이다.대구 서문시장이 받아준 여인 금달래
금달래는 그렇게 광인으로서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무태시장을 돌아다녔지만 구걸이 쉽지 않았다. 워낙 조그마한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금달래는 대구뿐만 아니라 경북 지역 가장 큰 시장인 대구 서문시장으로 향했고,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은 그녀를 받아줬다. 그때부터 금달래와 서문시장 상인들과의 공존이 시작됐다. 금달래에게 먹을 것을 옷가지를 나눠주고, 금달래가 발작하면 시장 아낙들이 달려가 옷을 다시 입혀줬다. 그렇게 시장 상인들의 배려와 보호 속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서문시장 인근에서 살았다. 일설에 의하면 1950년 한국전쟁까지도 서문시장에서 살았다고 한다. 원래 사람들이 자신의 몸종과 놀아난 여인이라면서 조롱을 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를 위한 가장행렬을 만들었다.영화 금달래 통해 전국으로 알려져
금달래 이야기는 그렇게 대구와 경북 지역에 파다하게 퍼졌는데 1986년 금보라가 주연한 ‘금달래’라는 영화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또한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이라는 말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인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아이를 기리기 위해 머리에 꽃을 꽂고 다녔지만 결국 사람들은 머리에 꽃을 꽂았다는 표현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대구 서문시장의 인심은 전설과 소문이 돼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전통시장을 살리는 방안 중 하나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인데 이를 폐지한다고 하면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폐지하는 것이 오히려 전통시장을 살리는 길이라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