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삼별초는 왜 진도에 주둔했을까
2023-08-05 어기선 기자
최씨 정권 무너졌지만
고려 원종은 무신정권을 종식시키고 원나라와 손을 잡았다. 그러면서 삼별초의 역할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됐다. 고려 원종은 삼별초를 해산하려고 했다. 1270년 원종이 해산령을 내리면서 지도자였던 배중손과 노영희를 중심으로 삼별초의 난을 일으켰다. 그리고 강화도를 벗어나 진도로 이동했다 강화도를 벗어나 진도로 자리를 옮긴 것은 ‘경제적 이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진도는 남해안과 서해안을 잇는 섬이다. 즉, 동쪽으로는 남해안 그리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서해안이 있다. 당시 세금은 주로 쌀로 납부를 했다. 그런데 당시 육로 교통이 불편하면서 해로를 이용하는 즉 조운 제도가 있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생산하는 쌀이 강화를 거쳐 개성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이었고, 대몽항쟁 당시에는 강화로 들어갔다. 고려 원종이 원나라에 항복을 하면서 사실상 강화도에서 저항을 할 수 없는 삼별초로서는 새로운 터전이 필요했고, 그것은 진도였다. 진도는 남해안과 서해안이 만나는 길목에 있고, 섬도 컸기 때문에 삼별초 군사들이 충분히 주둔할 수 있었다. 아울러 전라도의 비옥한 곡창지대를 점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삼별초로서는 최적의 장소였다.정치적인 이유도
또한 진도를 택한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삼별초는 호남지역과 경상지역 그리고 제주권을 석권하면서 자신이 고려의 정통 조정이라고 대내외에 선전을 했다. 삼별초가 진도에 주둔을 하는 정치적 이유는 최씨 정권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최충헌은 정권을 잡으면서 오늘날 총리급인 문화시중에 임명됐고, 지금의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식읍 3천호, 식실봉 200호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에 이어지면서 전라도와 경상도 땅을 중심으로 대지주로 등극했다. 따라서 진도에 삼별초가 주둔한 것은 최씨 정권의 영향 때문이다. 고려 원조 때 최씨정권이 무너졌기 때문에 최씨정권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봉기를 하기 위해서는 강화도보다는 진도에 주둔해야 했다. 고려 원종으로서는 이들을 진압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고려’가 무너질 판이었다. 삼별초가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에 영향을 미치면서 고려 조정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1271년 원나라와 고려군은 여몽연합군을 만들었고, 삼별초는 죽을 각오로 항전했지만 함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