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마름

2023-08-09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마름은 ‘대리인’ 혹은 ‘관리인’이라고 부른다. 지주(五人斗地主)의 토지 소유가 광대해지면서 그에 따라 마름이 필요했다. 전세계적으로 마름이라는 제도는 있었고,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로도 마름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소설 ‘대지’의 왕릉 첫째 아들 왕이가 마름을 고용했다는 내용이 나오듯이 전세계 곳곳에서 마름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우리나라 마름은 일제강점기 때 정착

우리나라에서도 마름이라는 제도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때에도 조선시대 때에도 있었다. 하지만 마름이 보편화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지주는 재지지주, 즉 소작지 인근에서 소작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마름을 두지 않았다. 또한 조선 후기 이전까지는 논이나 밭에 직접 씨를 뿌리고 걷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대규모 농장을 만들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토지 소유 개념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경작을 하는 것이다. 즉, 농민은 경작을 해서 세금으로 납부를 하는 방식이고, 지주에게는 ‘수조권’ 즉 농민들로부터 도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조선시대까지 ‘땅’이라고 하면 ‘나라’가 갖는 것이지 개인이 갖지 않았고, 토지를 경작하는 권리와 그 토지를 경작해서 산출한 작물을 걷어들이는 권리 즉 수조권만 있었다. 따라서 마름이라는 개념은 있었지만 보편화하지 않았다.
사진=픽사베이

토지조사사업으로 마름 보편화

그런데 1910년 일제강점기가 조선을 강탈하면서 토지조사사업을 벌였다. 토지조사사업은 ‘토지’의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조선 백성들에게 각인시키게 만들었다. 그 이전까지 ‘땅’이라고 하면 땅은 나라가 소유하고, 농민은 그 땅에서 경작을 하고, 지주는 그 산출물을 갖고 가는 형태였는데 이때부터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주는 소작농과 함께 생활을 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다면 수확철에 산출물을 걷어가는 방식을 통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작농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예컨대 경성에 있는 사람이 경남 하동 지방에 땅이 있다면 직접 소작농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서 마름을 보내서 통제를 하는 방식을 취하게 됐다. 이런 이유로 마름의 횡포가 일제강점기 때 가장 크게 부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까지 지주는 그냥 산출물만 걷어가는 방식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부터는 시시콜콜 소작농을 마름을 통해 간섭을 하니 그 횡포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 문학에 나타난 마름

소설 ‘그리운 보릿고개’에서는 박용칠이 마름 역할을 했다. 자신의 소작인들에게 갑질을 하는 사악한 인물이다. 소작인의 딸을 자신의 첩으로 삼으려다가 거절을 당하자 곧바로 일본군 위안부로 팔아버리는 그런 악행을 저질렀다. 소설 ‘나비를 잡는 아버지’에서는 바우와 경환이 나오는데 바우는 소작농의 아들, 경환은 마름의 아들로 나온다. 이처럼 각종 문학에서는 마름을 악행을 묘사했는데 해방 이후 토지개혁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마름은 사라졌다. 하지만 오늘날 회사에서 중간관리자를 마름으로 비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