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강남 개발 역사

2023-08-10     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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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지난 8일 밤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강남역 일대가 침수가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강남은 현대사에 있어 욕망과 개발이 집합된 장소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강남역 일대가 침수가 됐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개발의 상징이 곧 강남이었기 때문이다.

한강다리 폭파·김신조 사건

1953년 한국전쟁이 종료가 되면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북괴가 다시 쳐들어온다면 또 다시 피난을 가야 하는데 그때도 한강다리를 또 폭파해야 하느냐의 걱정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피난을 갔다. 그 덕분에 서울시민이 한강 이북에서 고립이 됐다. 그런 이유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서울 시민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수도 이전을 결심하게 됐고, 한강 이남으로 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박정희 정권이 들어섰다. 박정희 정권 역시 휴전선과 서울이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수도 이전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로부터 300m 떨어져있는 종로구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수도 이전을 완전히 결심하게 됐다. 그러나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한강 이남을 개발하자는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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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건설

강남을 개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이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해야 하는데 이미 여의도 개발로 현금 흐름이 어려운 상태였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와 주변 부지의 땅을 구입해야 하는데 국가 재정이 바닥이 났다. 만약 공산주의국가라면 지주에게 무상으로 몰수하면 되겠지만 자본주의를 표방한 국가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본을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강남을 개발하면서 거기서 얻는 이익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강남 개발이 본격화됐다.

인구 포화 상태

아울러 1960년대부터 계속해서 농촌 인구는 줄어들고 서울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미 4대문 안은 인구 포화상태에 놓이게 됐다. 이들의 베드타운이 필요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들의 베드타운을 한강 이북에 만들 수 없었던 것은 북괴의 침략이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북괴의 침략으로부터 서울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한강 이남 즉 강남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3선 개헌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하게 되면서 건설회사들에게 영동 개발을 맡긴 후 정치자금을 받는 형식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건설회사들은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고, 박정희 정권은 막대한 정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3선 개헌과 대선에서 승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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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한강교 개발

강남을 개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이 바로 제3한강교 오늘날로 한남대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강 이남 중에 하필 강남을 택한 이유는 비록 저지대이고 조선시대 ‘뽕밭’으로 유명했지만 산악지대가 아니라 평야 지대이기 때문에 넓었다. 막대한 개발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울 중심부와도 충분히 연결이 가능해서 서울 도심과 강남의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에 강남으로 정했고, 제3한강교를 만들었다. 아울러 건설회사들의 아파트 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건설자재를 강남 일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린벨트 지정

문제는 강남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초반에 분양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린벨트를 지정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1년 그린벨트를 지정하면서 개발을 제한했다. 강남은 개발을 풀어주는 대신 다른 지역의 개발을 묶어 버리면서 다른 지역의 개발 호재를 차단시켜서 강남 땅을 사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강남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물론 그린벨트는 훗날 환경보호의 효과를 누리게 했지만 처음에 그린벨트 지정은 ‘명목상’으로는 환경보호였지만 사실상 강남 개발을 위한 방편으로 마련했다.

초중고교 이전

강남 아파트 분양을 위해 만든 또 다른 방편은 강북에 있는 유명 초중고교를 강남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휘문, 경기, 서울, 중동, 경기여고, 숙명여고 등 강북에 있던 유수의 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했고, 단대부고, 반포고 등이 세워졌다. 그러면서 8학군이 형성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육열에 따라 강남으로 이사를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분양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고위 관료나 교수 혹은 기업가 등에게 분양 특혜를 주면서 부유층이 강남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 근린시설이 들어서면서 강남은 ‘부자 동네’라는 인식이 강하게 깔리게 되면서 강남을 선호하게 됐다.